인간의 찬란한 본성인 사랑으로 기성 권력의 우상 타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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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
<5·끝> 중국 소설가 옌롄커

옌롄커는 중국 부조리 서사의 대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에 대해 김승옥 심사위원은 “사회주의 체제에 억눌린 개인의 비극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작가”라고 평했다. 자음과모음 제공
옌롄커는 중국 부조리 서사의 대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에 대해 김승옥 심사위원은 “사회주의 체제에 억눌린 개인의 비극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작가”라고 평했다. 자음과모음 제공
《작가 정신을 지닌 최초의 인류는 아마도 낙원에 있던 이브가 아닐까. 그는 완벽한 지식 체계와 절대 권력은 전지전능의 신에게 맡겼다. 그리고 아무리 추구해도 아리송하기만 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떤 권위와 권력도 인정하지 않은 채 끝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 최초의 인간인 것이다. 이런 정신을 지닌 인간군이 바로 예술가 집단, 특히 작가들이다. 》

역사 속에는 이런 작가들이 적지 않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61)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의 관심은 여러 분야에 두루 걸쳐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혁명 시대에 특히 주목했고, 당시를 그린 소설은 독자에게 주목받고 있다.

문화혁명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유가 사상을 비판적으로 보면, 황제의 절대 권력에 맹종하라는 비민주적 사상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인 셈이다. 그의 두 작품을 그가 말하는 ‘생존 현실’에 비춰서 분석해봤다.

옌롄커의 소설은 제목이 주는 의미가 강력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4년)와 ‘사서’(四書·2010년)를 비롯해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인생을 기록한 ‘나와 아버지’(2010년)가 있다. ‘나와 아버지’는 특히 문화혁명기 시골 풍경과 당시 경험을 객관적으로 그린 자전적 작품으로 알려졌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연설 제목에서 따왔다. 이 연설 구절은 후에 혁명 정신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소설에서 ‘인민을…’은 혁명 정신이 아닌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불운의 기호다. 동시에 주인공 남녀의 사랑을 나타낸다.

작가의 재주는 여기서 드러난다.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가장 찬란한 본성인 사랑으로 중국 사회의 근엄한 어록을 찢어 버린다. 옌롄커는 사랑의 정점을 그리면서 신들린 사람처럼 기존 세계에서 신성시하는 성물을 파괴한 것이다. 중국 사회를 짓뭉갠 작가의 노림수는 무엇이었을까. 동물적으로 사랑을 탐구한 것일까. 아니면 본능을 가장해 우상타파를 하려는 것이었을까. 직접 물어보고 싶다.

‘사서’는 문화혁명기에 시골로 쫓겨난 지식인들이 황무지에 막사를 짓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이 겪은 고초와 참담함은 건조하고 비참하게 묘사된다. 작품에 나오는 철을 만드는 장면은 중국이 겪었던 참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당시 중국은 온 마을마다 철을 만들기 위해 쇠붙이와 나무를 그러모았다는 보고가 전해진다.

이곳에 머물던 지식인들은 결국 반 이상이 굶어 죽는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제목 ‘사서’(四書)를 결국 ‘사서’(死書)로 읽고 싶어진다. 이 소설이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하늘의 아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 수용소에 갇혀 있던 지식인들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귀향 도중 한 무리를 만난다. 그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수용소가 가장 살기 좋다며,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저주 받은 사지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니.

소설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비참함이다. 이런 비참함은 중국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의 크기가 조금씩 커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묵묵히 달걀로 바위를 깨듯 글을 써온 작가들에게 빚진 바가 크다. 미련한 작가들이 승리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달걀은 결국 바위를 깨뜨리고야 만다.

● 옌롄커는…

1958년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태어나 허난대 정치교육과를 거쳐 해방군예술대 문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창작 활동을 시작해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일광유년’(日光流年),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 ‘풍아송’(風雅頌) 등을 펴냈다. 제1, 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등 20여 개 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 20여 개국에 작품이 번역·출간됐으나, 중국 내에선 출간 금지된 작품이 적지 않다. 문단의 지지와 대중의 사랑을 고루 받으며 중국에서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김승옥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상#옌롄커#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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