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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이 언젠가는 레트로[사진기자의 ‘사談진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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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이 언젠가는 레트로[사진기자의 ‘사談진談’]

김재명 기자 입력 2019-08-28 03:00수정 2019-08-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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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돈의문 박물관 마을 모습. 1970, 80년대 극장 간판을 비롯해 여관, 만화방 등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재명 기자
사촌의 결혼식 덕에 오랜만에 시골집에 모인 형제들과 옛날 앨범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옷 입은 게 왜 이렇게 촌스럽니. 머리는 쥐 파먹은 것처럼 저게 뭐니?” “하긴 저때 이발관이 어디 있었겠어. 집에서 가위로 대충 잘랐지” “그래도 저 시골집 살 때가 좋았어.” 수십 년이 흘러 색이 바랬지만 그래도 사진이 있어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사진 속 양옥집이며 자전거, 재봉틀, 브라운관 텔레비전 등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반추할 수 있었다. 사진은 당시의 패션, 문화, 시대 상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자신의 현재를 많이 올려 둔다. 일상생활부터 여행지 풍경, 심지어 오늘 먹은 점심 메뉴까지 말이다. 사라지는 일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일까. 수십 년 전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추억을 소환하느라,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과거에서 발견한 인사이트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른바 레트로(Retro) 또는 뉴트로(New-tro) 바람이다.

산업화 시대 경제성장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서울 영등포의 한 공장은 제품 수요가 사라지자 몇 년 전부터 운영을 중단한 채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외국 슈퍼카 발표회가 열렸다. 대부분 신차 발표회는 호텔이나 자동차 매장에서 열리는 것과 비교해 옛 공장과 신기술의 만남은 상당히 이채로웠다. 레트로는 현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갤러그나 테트리스 등 옛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초창기 오락실’도 다시 생겨났다. TV나 영화에서 본 듯한 오래된 택시나 버스, 구형 공중전화기도 서울 등 도심에서 소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울 돈의문 박물관 마을 일대는 콘셉트의 하나가 바로 복고풍이다. 달동네 같은 좁은 골목으로 올라가면 독립운동가의 집을 비롯해 이발관, 사진관, 극장 등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재현해 놓았다.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한 종로구 익선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옷과 소품을 대여하는 양장점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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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서울 성수동과 홍익대 인근 상수동은 1970, 80년대에는 작은 공장들이 성업하던 곳이다. 성수동은 제화거리로 유명했던 곳이고 상수동은 기계공장과 여러 종류의 창고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문을 열더니 최근에는 아예 레트로를 겸비한 가게가 즐비하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강화도에서 넓은 부지를 갖고 있는 한 공장은 내부가 다양한 복고물품으로 가득한 멋진 카페로 변신했다. 스타벅스 같은 판박이 커피숍이 아닌 추억이 묻어나는 곳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과거로 되돌아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레트로 카페는 30, 40대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들은 부모님과 오기도 하고 자식들을 데려오기도 한다. 한 장소를 3대가 공유하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장소나 물건이 낯설지 않다면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고, 처음 본 것에 호기심이 발동한다면 새로운 기억을 남기는 것이다.

사진기자는 원래 새로운 현상을 기록하는 직업이다. “신기술을 집약해 만든 것으로 오늘 세계 최초로 공개합니다.” “국내산 재료가 들어간 신 메뉴를 출시합니다.” “새로운 엔진을 장착해….” 평상시 취재 현장에서 들어오던 말이다. 그들의 카메라에는 국내 최초, 세계 최초, 신제품 출시 등 늘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공개되는 현장이 담겼다. 신기술이 적용되어 성능의 변화가 있거나 외형이 바뀌는 등 뭔가 달라져야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진기자들은 복고 이미지를 가장 좋아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이제 곧 한가위가 다가온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거나 귀향길에 나서는 가족들 중에서 한복 입은 가족을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이미지는 모두 복고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레트로의 유행은 어린 시절 기억을 간직한 소년이 어른이 돼 옛것을 다시 찾으면서 시작됐다. 유행은 돌고 돈다. 흘러가는 시간을 묵묵히 기록하고 저장하는 직업이 사진 찍는 일이다.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다시 소환될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돈의문 박물관#레트로#뉴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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