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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위안부’문제를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는데, 우리는…”[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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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위안부’문제를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는데, 우리는…”[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이진구 논설위원 입력 2019-08-27 03:00수정 2019-08-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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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만에 ‘위안부’ 증언집 공동 英譯한 양현아 서울대 교수
영어로 번역된 증언 4집은 2001년 초판 1000부, 2011년 개정판 1000부를 찍었다. 대부분 도서관 등에서 구입했는데 도서 상태가 ‘소재불명’으로 표기된 곳도 있었다. 양현아 교수는 “거의 10년 전에 개정판을 냈는데 아직도 시중에 책이 남아 있다는 게 우리의 관심 부족을 방증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최근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집(‘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제4집·2001년 출간)이 18년 만에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됐다는 뉴스가 났다. 이 보도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번역이 안 됐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참상을 가장 생생하게 알릴 수 있는 증언집이 번역되지 않았다니,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세계에 알린 걸까. 번역 팀장을 맡은 양현아 교수(59·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생각은 했겠지만 인력과 재원이 부족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증언집의 특성상 외국어 번역은 당연한 것 같은데 18년이나 걸린 이유가 있나.

“우리도 지금 번역을 해놓고 보니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을 거다. 단지 그걸 감당할 인력과 재원 등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의 성격상 출판사가 관심을 갖기도 쉽지 않았고….” (다른 책들은 번역된 게 있나.) “증언집이 모두 6집인데 1집은 1995년 영국 교수가 번역해 출간됐다. 이번에 번역된 4집은 현재 초벌 번역 상태인데 이렇게 둘뿐이다.” (영국 교수가 했다고?) “음악과 한국학 전공자인 키스 하워드 교수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영화감독 대실 김 깁슨이 ‘깨진 침묵(Silence Broken)’이란 책에서 증언을 넣었지만 증언집은 아니다.”

※키스 하워드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는 국내에 국악 전도사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가 평소 일본군의 만행에 분개한 것에 비하면 좀 부끄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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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는 했다. 그때 ‘이렇게 어려운 한국말을 누가 번역하겠느냐’고 답했던 것 같다.” (번역이 그렇게 어려운가.) “여기 이 구절을 봐라. ‘그놈 인자 풀국 쪼깨 해가꼬 자강자강 볼바서 파싹 몰라서 주므는 한 오십 전쓱 줘.’(최갑순 증언 153쪽) 우리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완전한 구어체로 담았다. 한국인도 이해하려면 한참 읽어야 한다. 또 성폭력 경험이기 때문에 직설적인 답 대신 행간의 의미가 많다. ‘하루에 몇 명 상대했어요?’라고 이렇게 대놓고 물을 수가 없었다. 에둘러 물으면, ‘그게… 뭐더라…’ 하고 딴청 피우다 ‘이것 좀 드셔’ 하며 회피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작업을 한 우리들은 증언집을 글이자 동시에 소리집이라고 불렀다. 이런 글을 누가 영어로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고…. 보수 정부 시절에는 ‘위안부’ 운동과 연구에 대한 사기가 많이 떨어져서 일부러 찾아다니며 번역하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위안부(慰安婦)’란 말은 일본군의 만행을 축소하는 면이 있는데 여전히 쓰는 이유가 뭔가.

“사실 극심한 성폭력에 ‘위안’이라고 쓰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일본군이 그런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역사성도 갖고 있고, 처음에는 이 용어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적었을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일본군 성노예제(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고 불렀는데, ‘위안부’라는 말을 지금도 사용하는 것은 관성도 있지만, 심각한 성폭력을 은폐하고 사소화하려는 기막힌 역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용어가 괜찮아서가 아니다. 그래서 ‘이른바’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위안부’라고 작은따옴표를 붙여 쓰고 있다.”

※증언 4집은 ‘위안부’를 ‘comfort woman’으로 번역했다.

―이번 번역은 어떻게 이뤄지게 된 건가.

“번역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있었다. 마침 작년에 여성가족부에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가 창립됐는데 그때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연구소에서 용역사업으로 발주했는데 우리 팀이 선정됐다. 7팀이나 지원해서 좀 놀랐다.” (7팀이나?) “국내 출판사, 대학 연구소 등에서 지원했던 것 같다. 의미 있는 사업이라 참여한 게 아닌가 싶다.”

※양 교수 팀은 서울대 여성연구소와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소재 한국학센터 연구자들로 구성됐다.

출간 18년 만에 영어로 번역된 증언 4집(한국어판).
―단순히 한국말을 영어로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고 하던데….

“예를 들어 ‘보국대에 끌려갔다’ ‘방적공장에서 일했다’는 증언을 번역할 때, 당시에 보국대 제도가 실재했는지, 피해자가 있던 방적공장이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확인했다.” (왜 그런 건가.) “영문 증언집이 출간되면 외국인들이 보고, 특히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사실이 아니면 증언의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군을 Customer, 손님으로 번역했는데 오해의 소지는 없나.) “피해자들이 그렇게 증언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이 번역을 보고 ‘위안소가 민간이 설립한 성매매업소와 비슷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군 허락 없이 위안소를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군인들만 이용했고, 성병 검진은 군의관들이 했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맥락을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외국인들은 배경을 모르니 오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설명과 지배자의 언어로 현실을 이해해야 했던 피해자 입장에 대한 각주를 달았다.”

―일본어 번역은 어디서 했나.

“지난해 용역사업을 발주하면서 일본어 번역도 같이 하려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됐다. 그래서 김부자 일본 도쿄외국어대 교수와 다른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올 4월에 번역을 끝냈다. 지금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 정부 지원을 안 받은 게 일본에 있는 학자들에게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는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많은가.) “사실 ‘위안부’ 연구나 식민주의 책임에 대한 연구가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많은 것으로 안다. 식민주의와 가부장제 문제에 깨어 있는 지식인도 많다. 마쓰이 야요리 같은 분은 히로히토 일왕의 책임을 지적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아사히신문 기자를 지낸 마쓰이 야요리(68·사망)는 퇴직 후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며 도쿄에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실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일왕과 일본 정부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로 인해 그는 일본 사회에서 많은 핍박을 받다가 2002년 12월 암으로 사망했다.

―미 캘리포니아주가 2016년 중등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됐는데…. 미국 안에도 일본 지지 그룹이 있어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소됐다’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도 함께 가르치도록 했다. 역사 교육을 놓고 외국에서 한일이 경쟁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영문 번역에 참가했던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센터 연구원들은 미국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위안부 문제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정말 얼마나 아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증언 4집이 거의 10년 전에 개정판을 냈지만 아직도 시중에 남아 있다는 게 우리의 관심 부족을 방증하는 것 아닌가 한다.”

―일각에서는 ‘위안부’ 대다수는 계약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데….

“일본 정부 주장인데…. 강제의 등급에는 납치 같은 좁은 것도 있지만, 제도화된 넓은 의미의 강제도 있다. 어떤 마을에 ‘10명을 모집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이장이 나섰다면 이는 행정적으로 강제된 동원이다. 동행한 군인도 총칼을 휘둘러야만 강제가 아니다. 있는 것만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데…. 일본군 성노예제를 ‘체계적 강간’이라고 부르는데, 법과 정책에 의해 성노예제를 수립하고 광범위한 피해자를 양산한 강간을 의미한다. 피해자의 동의나 가해자의 물리적 폭력, 강요 여부와는 무관하다.”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 제기를 반일 종족주의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식민주의(colonialism)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반(反)일본을 하자는 게 아니다. 광복 후 일제의 잔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탓에 식민주의 유산이 너무나 많이 답습됐다. 우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 얼마나 배웠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한국인이 누구인가를 가르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 첫걸음으로 우리 안에 있는 식민주의 영향을 직시하자는 거다.”

―우리 사회가 호주제 폐지에 담긴 큰 의미를 직시할 기회를 놓쳤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호주제는 우리 전통이 아니고 일제가 식민 통치를 위해 도입한 가족제도다.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하면서 여성 차별과 함께 식민주의 법제도라는 점이 중요한 논거였는데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는 후자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걸 보면서 우리 법 안에 녹아 있는 식민지성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웠다.”

―‘위안부’도, 호주제도 일제 때 일인데… 이 분야에 관심 갖는 이유가 뭔가.

“일제 식민주의 역사를 모르면 어떻게 그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지 길을 찾기 어렵다. 탈식민주의는 우리 안에 내재한 식민주의의 영향을 직시하고, 하나의 민족이라는 허상 속에서 차별당한 여성과 민중을 조명하자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가족제도는 서로 다르지만 내게는 ‘포스트식민 페미니즘(postcolonial feminism)’의 문제의식을 일깨우면서 함께 다가왔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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