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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담아 간결하게, 그게 말의 핵심이다[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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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담아 간결하게, 그게 말의 핵심이다[DBR]

박영규 인문학자입력 2019-08-26 03:00수정 2019-08-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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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탁월한 언어철학자였다. 일찌감치 소통의 중요성을 간파한 장자는 우화를 통해 말의 의미와 무게를 강조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섭공자고(葉公子高)가 초왕(楚王)의 사신으로 제나라에 가게 됐다. 섭공은 출발하기 전 스승을 찾아가 사신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조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면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멀면 커뮤니케이션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제나라는 후자에 속하니 군주의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자네의 임무가 막중하다. 특히 어려운 것은 양국의 군주가 동시에 기뻐할 말과 동시에 노여워할 말을 전하는 것이다. 양쪽이 모두 기뻐하는 말에는 필요 이상의 아첨,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고 양쪽이 모두 노여워하는 말에는 불가피하게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 섞이기 마련이다. 무릇 말이란 지나치면 거짓되기 쉽고, 거짓되면 소통이 막히게 되고, 소통이 막히면 말을 전하는 자가 화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옛 속담에 이르기를 ‘그대로의 실상을 전하고 과장하지 않으면 일신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장자 ‘인간세’편)

비단 국제관계뿐만 아니라 정부나 기업, 학교와 같은 크고 작은 조직 내에서도 메신저의 역할은 중요하다. 직장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메신저다. 직원들은 최고경영자(CEO)의 메신저고, CEO는 직원들의 메신저다. 직장인들이 출근하자마자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부터 켜는 것은 조직 내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통 과정에서 어느 한 라인에서라도 메신저가 정보를 왜곡하면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장자가 갈파하듯 조직이 건강하려면 각 라인의 메신저들이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조직을 춤추게 하고 소통에 날개를 달아주는 말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장자’에서는 말의 진정성과 언행일치, 간결하고 담백한 언어 리더십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개가 잘 짓는다고 해서 훌륭한 개라고 말할 수 없듯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해서 현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狗不以善吠爲良 人不以善言爲賢·구불이선폐위량 인불이선언위현).’(장자 ‘서무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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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가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말에는 생리적, 물리적, 심리적 요소 등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보면 단어와 문장이 입에서 나와 상대의 귀로 전달되는 생리, 물리적 요소보다는 그것이 상대의 마음속에 수용되는 심리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언변이나 긴 문장이 아니라 말의 진정성이다. GE 회장을 지낸 잭 웰치가 어린 시절 어눌한 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자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네 말이 느린 것이 아니라 네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른 거야. 말을 잘하는 것보다는 말에다 생각의 깊이와 진심을 담는 게 더 중요하단다.” 웰치를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만든 것은 언어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 어머니의 말 한마디였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으며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성인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다(知者不言 言者不知 故聖人行 不言之敎·지자불언 언자부지 고성인행 불언지교).”(장자 ‘지북유’편)

공자는 자신의 저서를 주나라의 도서관에 보관하기 위해 그곳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노자를 찾아갔다. 노자는 거절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공자는 자신의 저서 12권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다. 그러자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번잡하니 요점만 말하시오(大만 願聞其要·대만 원문기요).” 장자 ‘천도’편에 나오는 우화다.

내공이 얕으면 말이 번잡해진다. 번잡한 말로는 빅데이터를 감당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을 경영의 조력자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과 함께 간결하고 담백한 언어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을 보태는 능력이 아니라 말을 빼는 능력이다. “지극한 말은 말을 버리는 것이고, 지극한 행위는 행위를 버리는 것이다(至言去言 至爲去爲·지언거언 지위거위).”(장자 ‘지북유’편)


박영규 인문학자
#언어철학자#국제관계#신뢰#조직#커뮤니케이션#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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