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보수다?[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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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좌파 우파 편가르기… 다양성 인정 실용주의 확산돼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언론사에서 정보기술(IT) 회사로 옮겨간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보수언론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나보고 진보라고 했는데 새 회사에서는 나를 보수라고 한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상대적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진보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정부 사람들 중 일부가 진보일지 모르겠지만 문 대통령이나 정부의 정책 기조는 세계적인 이념지형으로 보면 중도 또는 보수에 가까워 보인다. 우선 문 대통령의 부모는 함경남도 흥남에서 공산당을 피해 미 군함을 타고 월남했다. 보수우파를 자처하면서도 군대를 기피하는 사람이 많지만 문 대통령은 공수부대에서 3년 국방 의무를 다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경제정책에서 별 차이도 없다. 최저임금 1만 원은 지난 대선 때 홍준표 한국당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내세웠다. 현재 한국 상황을 보면, 기업 경쟁력을 높여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늘린다는 경제사회정책의 큰 그림은 보수당이건 진보당이건 다를 수가 없다. 문 대통령도 2015년 동아일보 논설위원 집단인터뷰에서 “유럽 기준으로 보면 우리 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보수정당”이라고 했다.

대북 정책 역시 북한과 대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분단 현실을 인정한다는 면에서 ‘보수적인’ 정책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박근혜 정부 말기처럼 북한 붕괴를 예상하고 강경 정책을 폈다가 전쟁이 나거나 정말 북한이 붕괴된다면 지금 한국이 감당할 수 있는가? 남북의 체제가 다른 현실을 인정하고,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조금씩 대화와 교류를 통해 이질성을 줄인 뒤 언젠가 북한 주민들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택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강경한 정책들이야말로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는 위험한 급진주의다.

1972년 박정희 정부가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 역시 남북한이 상호비방과 무력도발을 금지하고, 다방면에 걸친 교류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아베가 싫지만 대화해야 하는 것처럼, 공산당이 싫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북한과 대화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쉽지만 비판자들 가운데 설득력 있는 한반도 정책 대안을 내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은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정의하기에 너무 왜소하고 단편적인 틀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과 논리로 얘기하기보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부터 가르는 사람은 빈약한 콘텐츠를 편협한 진영논리로 덮으려 하거나 정치 공세를 펴기 위한 경우가 많다.

극우 정치인 아베는 경제에서는 기업들에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카드수수료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등 한국 정부보다 더한 좌편향 정책을 폈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파의 자유무역 대신 좌파의 전유물이었던 보호무역을 강화했다. 친북은 좌파라는데 북한 김정은과 “좋은 친구”란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늘 “나는 돈 많이 버는 노동자”라며 노동자임을 자처했다. 오랜 집념으로 금강산 관광의 문을 열었으며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소 떼를 몰고 방북했다. 정주영 회장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문 대통령도 말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어느 면에서는 보수적이고, 어느 면에서는 진보적이다. 덮어놓고 편 가르기부터 할 게 아니라 사물의 명과 암, 정책의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 토론하는 실용적인 문화가 확산되길 바란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좌파#우파#보수#진보#편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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