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밖의 자유[이준식의 한시 한 수]〈18〉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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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소리 조잘대며 제멋대로 나다니네./울긋불긋 산꽃 사이, 높고 낮은 나무 위로. 이제야 알겠네, 금빛 새장에 갇혀 내던 그 소리,/숲속 자유로이 지저귈 때만 못하다는 걸. (百전千聲隨意移, 山花紅紫樹高低. 始知鎖向金籠聽, 不及林間自在啼.·백전천성수의이, 산화홍자수고저. 시지쇄향금롱청, 불급임간자재제.) ―‘개똥지빠귀(畵眉鳥·화미조)’(구양수·歐陽脩·1007∼1072)》
 
시제 ‘화미조’는 문자 그대로 눈썹을 그린 새, 눈 주변에 선명한 흰색 줄무늬가 길게 나 있어 마치 그린 듯한 눈썹을 가졌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개똥지빠귀라는 우리말 이름도 정겹다. 참새나 딱새처럼 체구는 자그마해도 목청이 맑고 카랑카랑해서 더 눈길을 끈다. 시는 언뜻 보면 숲속 새소리를 즐기는 한가로운 풍경을 묘사한 듯한데 곱씹어보면 속박에서 벗어난 시인의 내면이 슬쩍 묻어 있다. 화려한 금빛 세계였지만 조정은 시인이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니거나 목청 돋우어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당쟁에 밀려 멀리 외직으로 좌천되었을 때 비로소 되찾은 활기, 시인은 그것을 ‘숲속 새들의 자유로운 지저귐’에 빗댔다. 영물시의 단순함을 벗어나는 비유 솜씨다.

현대인이라고 다를까. ‘울긋불긋 산꽃과 높고 낮은 나무’를 향한 동경이니 향수니 따위는 다 잃어버린 채 고단과 경쟁에 허우적대는 일상, 금빛 새장의 허울에 갇혀 까닭 없이 분주하기만 한 시간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어쩌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미지의 새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영원한 자유, 갈등으로부터의 탈출, 무한의 비상(飛翔)을 꿈꾸면서 말이다.

구양수는 내용이 빈약한 화려한 문풍을 배격하고 실용적인 산문 창작을 주창했는데 과거 시험을 주관하면서 소식(蘇軾)·소철(蘇轍) 형제를 직접 발탁하기도 했다. 송대의 대표적 문인이자 정치가, 서예가이자 역사가인 그는 “군자는 도(정의)를 같이하면서 붕당을 만들지만 소인은 이익을 같이하면서 무리를 이룬다”(붕당론·朋黨論)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새장#화미조#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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