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월드뮤직,그 너머[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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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조 록 밴드 잠비나이. 왼쪽부터 김보미(해금), 유병구(베이스기타), 이일우(기타, 피리, 태평소), 최재혁(드럼), 심은용(거문고). 영국의 세계적 음반사 ‘벨라 유니언’과 계약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비스킷 사운드 제공
5인조 록 밴드 잠비나이. 왼쪽부터 김보미(해금), 유병구(베이스기타), 이일우(기타, 피리, 태평소), 최재혁(드럼), 심은용(거문고). 영국의 세계적 음반사 ‘벨라 유니언’과 계약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비스킷 사운드 제공
임희윤 기자
임희윤 기자
‘지구미술’ 같은 게 있다고 치자. 미술 장르로서. 실제론 없다. 가정을 해보자는 거다. 어떤 나라의 예술가들은 바로 이 지구미술에서도 소외된 상황을. 같은 땅 딛고 사는 지구별 사람들이 이 나라 미술에 관심이 없다는 것. 절망적 상황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든 ‘지구미술’계에라도 들어가려 발버둥치게 된다. ‘자, 여기 우리도 높은 문명을 자랑하는 지구인이었다오.’

‘월드뮤직’이란 게 있다. 음악 장르로서. 실제로 있다. 한때 월드뮤직에서조차 소외됐던 상황은 우리나라 얘기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며 우리 문화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꽃이 만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덕수의 사물놀이, 황병기의 가야금 산조가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을 때, 뉴스는 ‘올림픽 금메달∼’만큼의 낭보로 전해졌다.

#1. 서기 2019년. 세상은 뒤집혔다. 방탄소년단은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 콘서트를 매진시켰다. 수년 전 빌보드는 케이팝 차트를 만들었다. 세계적 음원 서비스 플랫폼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가 근년에 잇달아 케이팝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제이팝(일본 팝)도, 시팝(중국 팝)도 못 차지한 경지. ‘라틴 팝’만 한 대분류를 케이팝이 꿰찼다. 케이팝의 ‘K’에서 카자흐스탄이나 케냐, 쿠웨이트를 연상시킬 세계인은 이제 없다. 만약 미래에 카자흐스탄 팝의 인기가 폭발한다면 그들에겐 카팝(Ka-pop) 정도의 명패가 남아 있을 뿐이다.

#2. 전통 있는 미국 영상음악 시상식인 MTV 비디오뮤직어워드(VMA)도 올해 케이팝 부문을 신설했다. K자로 시작하는 수많은 나라를 제치고 한국 음악의 독자성을 뽐내는 지금은 상전벽해다. 방탄소년단뿐이 아니다. 블랙핑크, NCT 127, 몬스타엑스, 세븐틴 같은 여러 그룹이 동시다발적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 꽤나 큰 팬덤을 구축했다. 한국어 노래는 장벽 같던 문턱도 자연스레 들락거린다. 한때 라디오 DJ들이나 외던 성스러운 문구, ‘이번 주 빌보드차트!’

#3. 몇 년 전 여름, 볼리비아에 갔던 게 기억난다. 고산 도시인 라파스 시내의 카페에서 ‘엘프 볼리비아’ 회원들을 만났다. ‘엘프’는 슈퍼주니어의 팬덤 이름이다. ‘슈퍼주니어 말고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가 있어요?’라는 질문에 볼리비아 엘프들이 뜻밖의 답을 쏟아냈다. “저는 싱어송라이터 ‘짙은’요.” “저는 루시드폴요.” 아이돌 그룹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 이름이 줄줄…. 슈퍼주니어의 영상을 보다가 추천 콘텐츠로 뜬 다른 한국 음악을 들어보고 빠진 거다.

#4. ‘케이팝’ 하면 국내외 공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이돌 댄스 그룹이다. 케이팝은 그러나 넓은 의미도 가졌다. 한국의 팝을 아우르는 단어다. 팝은 곧 대중음악이니, 케이팝이란 한국의 모든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셈이다.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기에 조금 다른 종류의 케이팝 역시 지금 어떤 전환점에 서게 됐다. 아이돌 위주의 케이팝은 폭발적인 질적 성장을 거둔 한국 음악을 포괄하기에는 지나치게 편협한 단어가 돼 가기도 한다. 록 밴드 편제에 해금, 거문고, 태평소를 결합해 살벌하고 웅장한 소리를 들려주는 밴드 ‘잠비나이’가 얼마 전 3집 ‘ONDA’를 냈다. 영국 음반사와 계약해 이미 몇 년째 세계 순회공연 중이다. 정작 멤버들은 ‘한국의 자랑스러운 국악 퓨전 밴드’라 불리는 걸 지독히 싫어한다. “그냥 록 밴드라 불러 달라”면서. 국악기가 눈길을 잡겠지만 음악의 심장은 록이라는 거다. 록에는 이제 딱히 국적이 없다. 미국과 영국 록이 유명해도 록은 세계인의 문화언어다.

#5. 경쟁과 점령이란 군국주의적 심리 놀음은 올림픽만으로 충분하다. 유수 은두르와 네네 체리가 함께 부른 ‘7 Seconds’(1994년)는 월드뮤직계의 기념비적 히트곡이다. 머나먼 세네갈과 스웨덴 가수의 합작이라는 의미 이상. 세네갈의 월로프어, 프랑스어, 영어가 뒤섞인 가사 가운데 후렴구는 ‘우리는 7초 떨어져 있다’다. 지구촌은 이제 0.1초의 시차도 용납 못 한다. 실시간 초연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냥 팝’의 창공을 훨훨 나는 새들의 비행, 그 장관을 상상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잠비나이#김보미#유병구#이일우#최재혁#심은용#벨라 유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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