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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금지법이 안착하려면[현장에서/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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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금지법이 안착하려면[현장에서/김은지]

김은지 사회부 기자 입력 2019-07-18 03:00수정 2019-07-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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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날인 16일 ‘직장갑질119’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인 참가자들의 대화 내용. ‘직장갑질119’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캡처
김은지 사회부 기자
A: 이 녹음 앱이 좋아요.

B: 인터넷 쇼핑몰에서 펜 모양 녹음기를 구입했어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날이던 16일 오전.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운영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녹음기 얘기가 단연 화제였다. 13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인 이 채팅방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모여 피해 경험을 공유하는 곳이다. 노무사의 상담을 받기도 한다.

상사의 모욕과 폭언에 시달려 온 직장인들은 피해 신고를 위한 증거를 모으기 위해 앞으로는 녹음을 습관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16일부터는 직장 상사의 괴롭힘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사용자는 지체 없이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하고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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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4년 차 직장인 박태희(가명·28·여) 씨는 4개월간 부서장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부장은 회의 때 박 씨만 배제했다. 박 씨의 연차휴가를 결재해주지 않기도 했다. 박 씨는 “상사의 괴롭힘을 신고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아 사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면서도 “마지막 수단이라 생각하고 증거를 모아 신고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괴롭힘 금지법은 박 씨와 같은 절박한 ‘계란’들을 위한 법이다.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막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 졌다.

그런데 법에 규정된 ‘괴롭힘’의 개념이 모호해 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관리자급 직원들은 ‘정당한 업무지시를 할 때도 눈치가 보인다’, ‘인사고과 잘못 줬다가 보복 신고 당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고 한다. 대기업의 한 중간 관리자는 “혹시라도 말실수를 할까 봐 개인적인 대화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행 첫날부터 이런 모호함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16일 모든 사업장에 구조조정, 성과 압박 등 기업의 정당한 경영활동도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취업규칙에 명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은 직급이 강등돼 월급이 깎였다는 이유를 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했다.

법이 원래의 취지대로 을(乙)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작동한다면 직원과 회사, 상급자 하급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반길 것이다. 하지만 괴롭힘 금지법이 상사의 정당한 업무지시까지 진정의 대상으로 삼고, 회사의 경영활동을 간섭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입법 취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회사와 직원, 상사와 부하 직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김은지 사회부 기자 eunji@donga.com
#괴롭힘 금지법#직장갑질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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