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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죽음의 계곡에서 탈출할 비법이 있을까요?[포도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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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죽음의 계곡에서 탈출할 비법이 있을까요?[포도나무 아래서]

신이현 작가입력 2019-07-09 03:00수정 2019-07-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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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저는 이제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됐습니다. 이때를 ‘마의 3년’이라고 한다던데 생각해보니 저도 3년 차 죽음의 계곡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힘듭니다. 선생님도 사업하는 중에 죽음의 계곡에 들어간 적이 있는지,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며칠 전에 있었던 농업 스타트업 페스티벌에서 한 연사에게 내가 던진 질문이다. 연사는 동지애가 느껴지는 눈길로 나를 보며 ‘컬컬’ 웃었다.

“죽음의 계곡은 사업 초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업 10년, 20년 차에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합니다. 계곡을 넘어 무덤에 들어가기도 하죠. 특히 자금이 쪼들릴 때는 직원 모두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연구자이든 개발자이든 모두 함께 마케팅에 발 벗고 나서야죠. 고민을 직원과 함께 나눠서 극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대답은 훌륭했지만 문제는 나에겐 고민을 나눌 직원이 없다는 것이다. 직원을 한 명 뽑아야겠다고 하니 레돔 왈, 그 직원에게 월급을 주려면 와인 3000병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지금도 농사와 와인 만들기로 눈코 뜰 새 없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지? 페스티벌에서 만난 다른 기업들은 다들 직원도 서넛은 되고 매출도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니, 이것은 내가 사업엔 꽝이라는 뜻인가. 할수록 더 못한다는 자괴감이 든다.

나는 생전 사업을 해본 적도 없지만 직장도 길게 다녀본 적이 없다. 그냥 남편이 벌어다주는 월급으로 살았다. 그때는 미래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압박감 같은 것에 시달린다. “대박 나세요!” “성공하세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대박 나지 않으면 내 인생이 실패한 게 되는가. 성공하지 않으면 내가 불행해지는 건가. 나는 오래오래 평안하게 살고 싶은데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릿속이 어두워진다. ‘그냥 굶어죽지 않을 정도만 돼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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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수업을 들었다. 세무와 회계의 모든 것, 사업화 전략 수립과 비즈니스 모델 개발, 공감마케팅, 성공적인 피칭 전략 키워드, 브랜드 메이킹,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즈니스, 수출역량 강화…. 제일 앞줄에 앉아 공책을 꼭꼭 눌러쓰며 공부하는 의지의 중년 여성, 이제 곧 놀라운 여자 최고경영자(CEO)로 탄생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업을 들을수록 깨닫는 것은 도무지 역량 강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노안으로 글자도 잘 보이지 않고 머리도 팽팽 잘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으니 이 모든 것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결론을 내린 뒤 포도밭으로 가 풀이나 열심히 뽑기로 했다. 밭에서 땀을 흠뻑 흘린 뒤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다. 저녁을 먹은 뒤 편히 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그러나 이 평화의 순간도 오래가지 못한다.

새로 나올 제품의 원가 계산도 해야 하고 상표 디자인도 들어가야 한다. 세금 계산서도 발행해야 하고 매출 실적도 들여다봐야 한다. 세무서에 시험 분석을 위한 술도 가져가야 하고 열 가지가 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서류들도 다 끝내야 한다. 그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새 양조장 건축 설계와 토목공사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 양조장 건축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찾아야 한다. 텔레비전 앞에서 축 늘어진 여자 CEO의 머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여기 이쪽 와인 창고 뒤쪽 벽을 빗물 저장고로 만들 생각이야. 그러면 여름에 이쪽 벽이 시원해서 냉각기를 따로 돌릴 필요가 없지. 그리고 가뭄에는 밭에 물을 주는 용도로도 쓸 수 있잖아. 어때?”

레돔은 매일 저녁 에너지 자립 생태건축 양조장을 설계하느라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밖에서 에너지를 끌어오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 태양열과 빗물, 지열, 벽의 위치와 지붕의 경사도 등을 유심히 연구한다. 아무래도 그를 위해 역량강화 수업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나는 죽음의 계곡에서 헤매고 있다. 여기서 나갈 비법을 좀 알려주세요.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농업#스타트업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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