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65〉인생은 소풍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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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바다 위 방랑자’, 1818년.
‘안개 바다 위 방랑자’, 1818년.
험준한 절벽 위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짙은 초록 코트를 입고 긴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이 남자. 짧은 머리를 바람에 나부끼며 안개가 자욱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감탄하고 있는 걸까. 거대한 자연 앞에서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있는 걸까. 뒷모습이라 그의 표정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이 그림은 대자연을 마주한 고독한 여행자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풍경화는 편안한 감상보다는 궁금증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림 속 남자는 전사한 독일군 장교나 평범한 기독교인의 상징으로 해석되지만, 화가의 자화상이란 주장도 있다. 사실 모델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프리드리히는 익명성과 보편성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물의 뒷모습을 자주 그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지금 가파른 바위산 정상에 올라 숭고하고 경이로운 광경을 응시한다. 화가는 그의 뒷모습을 전경에 배치해 감상자도 같은 풍경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그림 속 배경은 독일과 체코 사이의 엘베사암 산맥으로, 전쟁으로 집을 떠나 지내던 화가가 여행 중에 무작정 오른 산이었다.

인생 여정은 종종 등산에 비유된다. 정상에 도착했다는 건 인생의 최고점 또는 마지막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남자는 지금 더 나아갈 곳이 없는 생애 마지막 지점에 서 있는 듯하다. 프리드리히는 ‘눈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내면에 보이는 것까지 그려야 한다’고 말했던 화가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남자가 보는 광경은 그가 상상하는 천국의 모습이거나 아니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바라보는 치열했던 지난 삶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이라 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의 시 ‘귀천’의 마지막 부분이다. 우리도 소풍을 끝내는 날, 저 방랑자처럼 정상에 홀로 서면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안개 바다 위 방랑자#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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