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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 첫 女임원’…男후배에 승진 밀렸다 살아남은 비결?[김유영 기자의 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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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 첫 女임원’…男후배에 승진 밀렸다 살아남은 비결?[김유영 기자의 허스토리]

김유영기자 입력 2019-06-26 14:36수정 2019-06-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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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5년차. 인사가 났는데 승진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남자 후배들이 먼저 승진했다. 지금 있는 부서에서는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기껏 이 일을 하려 대학 공부를 하고 회사에 들어온 건 아닌데…. 서러운 마음을 달래지 못해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본부장인 김효정 상무(53)의 이야기다. 벌써 25년 전, 결혼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 아이가 있으면 그만 두는 게 관행이었으니, 승진에서 밀린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랬던 그는 2015년 상무로 승진해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됐다. 김 상무는 현재 직원 70여 명의 빅데이터본부를 이끌고 있다. 카드사들이 수익성 악화로 저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에 골몰인 가운데 신한카드는 빅데이터 전담 최대 조직을 꾸리고 있다. 그를 만나봤다.

김효정 신한카드 빅데이터본부장. 신한카드 제공


●“어쩔 수 없다면, 환경을 바꾼다”

대학에서 소비자경제학을 전공한 뒤 1990년 LG신용카드(현 신한카드)에 입사했다. 당시 그에게 맡겨진 일은 채권추심. 한마디로 카드 빚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일이 힘들다기보다, 같은 업무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마음이 힘들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이 되는 시점에 승진까지 밀린 것. 그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저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보기로 했어요. 차별이 덜한 공기업에 다시 들어가려고 결단을 내렸어요. 사표를 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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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반응은 예상 외였다. 여성 인력이 이런 일로 그만 두면 안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형성되며 다른 업무를 제안한 것. 당시 PC가 채권 관리 업무에 본격 적용되는 시기라 채권 관리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구축 작업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는 회사에 남기로 했고 시스템 구축과 데이터 분석까지 맡아 일했다.

ⓒhoster, Unplash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꼭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선후배들과도 많이 어울렸다. 술자리를 피하지 않았고 바둑, 탁구, 볼링, 산악 동호회 등을 다녔다. 동료 생일을 기억했다가 선물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휴가 내고 학원 가서 실무 배워와

하지만 채권 관리 시스템 관련 업무도 넓게 보면 채권 업무였다.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선배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고객마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안하는 등의 고객관계관리(CRM) 업무를 하게 됐다. 평소 사내에서 신뢰를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일 욕심을 많이 냈습니다. 어떤 존재감을 드러낼 지는 제가 선택하는 거라 생각해요. 제가 여기서 일하기로 선택한거라 제 선택에 대해 불평불만이 있을 이유가 없죠.”

그러다가 또 한 번의 위기가 왔다. 이번엔 CRM을 관장하는 파트장이 됐는데 데이터 통계에 대한 지식의 거의 없었다. 소비자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통계 패키지 실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부서장이 실무를 모르면 위아래로 무시당하기 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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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휴가를 냈다. 서울 강남역 인근 통계 학원에 가서 대학원생이나 취업준비생들과 SPSS, SAS 패키지를 배워왔다. 기본 개념을 알게 되니 후배들에게 업무 지시를 제대로 할 수 있었고 위에서도 ‘김효정, CRM 좀 아네’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후 핀테크 사업 부문을 맡아 온·오프라인 간편 결제 서비스뿐 아니라 고객·가맹점·사업자를 하나로 묶는 플랫폼인 ‘신한카드 판’을 맡게 됐다.

●아침 일찍 나와 그날 할일 그려보기


현재 김 상무는 햇수로는 29년째 일하고 있다. 회사 다니는 일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긴장 상태다.

특히 아침 시간을 알뜰하게 쓴다. 오전 5시 기상, 오전 5시 반 출근, 오전 6~7시 운동을 거쳐 오전 7시 반 사무실에 온다. 직원은 없다. 아무도 없기에 집중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는 30분 동안 그날 할 일에 대해서 미리 그려보는 ‘미라클 모닝’을 가진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서 하루가 달라지고 일년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거든요.”

ⓒicons8, Unsplash

현재 그는 ‘초(超) 개인화 서비스’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는 넷플릭스처럼 빅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해 고객의 시간 장소 상황 등을 예측해 고객이 필요한 혜택을 추천해 카드 사용을 유도하는 것이다. 한 고객 당 2만5000여 개에 이르는 소비 패턴이 추출되는만큼 방대한 데이터에서 진주를 캐내는 게 그의 역할이다.

예컨대 날씨가 좋아 한강 둔치에 놀러간 고객에게는 배달음식의 할인쿠폰을 띄우고, 야구장에 간 고객에게는 (야구장 근처의) 편의점이나 맛집 할인쿠폰을 보내는 식이다. 또 같은 메시지라도 맥락에 따라 할인마트 쿠폰을 보내면서는 ‘오늘 안 쓰면 손해입니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가 하면 디저트 쿠폰을 제시할 때에는 ‘오후의 달달함을 부탁해’라고 보낸다.


이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신경 쓰는 부분은 소통. 개인 사무실은 사방이 유리로 트여 남산까지 보인다. 하지만 이 곳은 회의실로 내어주고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한다. 기존 사무실에서는 아침마다 그날 할 일을 빠르게 서로 공유하고 바로 흩어져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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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김 상무에게 조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물었더니 ‘파리에서 뉴욕까지 빨리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답은 마음 맞는 사람이랑 가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죠.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고 힘든 걸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동료’가 있다면 뭐든 이겨낼 수 있어요. 또 누군가는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또 조직 전체로 볼 땐 당장 성과가 안 나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이 때 ‘제가 할 게요’라고 손을 드는 것도 중요해요. 당장은 내 성과로 이어지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 워킹맘, 임원되기까지 ▼

김 상무는 조직 생활에서 인간관계를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했다. 사내에서 각종 동호회 활동을 한 것도 대표적이다.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아들이 둘이라는 그가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했을까.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시고, 아파도 입원할 지경이 아니라면 회사에 있는 저에게 전화를 안 하셨어요. 시어머니는 항상 ‘회사 일에 개인적인 일이 개입되면 안 된다고 했죠. 집에서 일하는 걸 지원해 줄테니, 회사에서 동료들 불안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어요.”

의외였다. 친정어머니면 몰라도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회사 생활을 전폭 지원해주는 경우는 드문데….

“당신(시어머니)이 저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못사셨어요. 많이 배우지 못하기도 했고. 전업주부로 사셨거든요. 며느리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이처럼 초년병 시절 시어머니가 육아를 전폭 지원해줬지만 회사는 그렇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채권 관리 시스템 구축 작업을 할 때에는 큰 아이를 임신했었는데 임신 8개월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지금 같으면 임산부 야근과 임산부 장기간 근로는 모두 위법이지만 당시에는 공공연하게 임산부도 일했다.

아이 낳고 나서는 딱 60일 쉬고 복귀했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에서 넘어진 적도 있을 정도였다. 모유가 멈추지 않아 한 달 간 고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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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던 시절을 견뎌낸 김 상무가 ’2019년의 워킹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이제 육아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조직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사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아프다는 등 아이에 대해 부모가 불안한 부분이 있다면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없죠. 성과를 내려면 일차적으로 가정을 챙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지금은 아이가 힘들 때 조직이 가장 먼저 지원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상무 스스로도 개인적으로도 회사와 가정을 모두 동시에 잘 해 내기가 어려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왔을 때에 아이 애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게 아쉬웠죠. 일과 병행하느라 아이들한테는 맘 아프지 않게 하는 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이 매주 읽을 책을 정하면 각자 읽은 책 내용을 가족끼리 서로 말하는 것을 리추얼로 삼았다. 아이들도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남을 설득하기 등을 연습할 수 있었고, 가족끼리도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남편이 주도해 대학생인 두 아들과 책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아이가 어린 워킹맘에게 전하는 김 상무의 사소하지만 중요할 수 있는 조언 하나. 그는 평일이건 주말이건 항상 아이를 데리고 자라고 당부한다.

“가정적으로 에너지를 내야하는 시기가 있고, 일에 몰입해야할 시기가 있죠. 모두를 병행하기란 힘들죠.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자신을 위한 준비를 하는 거죠. 본인의 역량이 준비되어 있으면 됩니다. 여성들도 포기하지 말고 꿋꿋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포기를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기회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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