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보지 못한 마천루…‘아쿠아 빌딩’을 본 시카고가 들썩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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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25일 15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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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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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지니 갱의 아쿠아(Aqua·아파트) 빌딩이 가림막을 벗고 미국 시카고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 시장은 들끓었다. 각층의 발코니가 유연한 곡선을 그렸다. 서로 다르게 생긴 층들이 겹겹이 쌓이며 만드는 역동적인 볼륨이었다. S자형 백색 콘크리트 바닥이 산맥과 골짜기를 만들었다. 여태껏 시카고가 보지 못한 마천루였다.

시카고는 어떤 도시인가? 이 도시는 마천루를 19세기에 발명했고, 다른 주요 도시에 이를 전파했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까지 새로운 유형의 마천루 실험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 시카고임에도 불구하고 아쿠아는 시카고에서도 별종이었고, 특종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쿠아 이전의 마천루들이 시대별로 다른 겉옷을 입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의 보편적인 원칙이 있었다. 다름 아닌, 직각이다. 직각은 표준과 효율을 의미한다. 마천루를 직각으로 표준화하면 이전 층에 썼던 거푸집을 다음 층에도 쓸 수가 있어 시공은 빨라지고 공정의 효율은 높아진다. 아쿠아는 직각에 전면으로 도전한다. 직각을 버려 잃은 것도 있지만, 갱은 얻을 수 있는 세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는 높이와 방향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는 시카고의 아름다움을 세대마다 극대화하고 다양화 할 수 있다. 둘째는 발코니들이 층마다 빗겨 돌출하면 위아래 세대 간 수직적 소통이 발코니에서 가능해진다. 셋째는 마천루에 치명적인 풍하중이 곡면 발코니로 흩어진다. 이 세 가지 이유로 갱은 직각 마천루 아파트가 아닌 아쿠아를 지었다.

갱의 아버지는 토목 구조 엔지니어였다. 아버지는 주말과 휴가 때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새로 지은 교량이나 교통 인프라를 보러 미 대륙을 누볐다. 이때, 갱은 차 뒤에 앉아 흥분한 아버지의 설명보다 미국 땅의 다채로움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매료되었다.

아쿠아 설계시 갱은 미시건 호수와 5대호에서 영감을 받았다. 호수 곳곳에 융기한 라임스톤들이 적층한 모습으로 있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엣지(모서리)가 부드럽고, 물가에 있는 관계로 파도의 결이 남아 있다. 아쿠아는 이를 모티브로 삼았다.

유선형의 백색 발코니는 짧게는 60cm 길게는 360cm 유리 외장으로부터 돌출한다. 발코니 엣지는 파도처럼 굽이친다. 덕분에 거주자는 360도를 돌아가며 때로는 전진하며 미시건호수의 수평선을 바라보고, 때로는 후진하며 시카고강의 마천루 협곡을 바라본다. 또 날씨 좋은 주말에는 위아래 세대가 발코니에서 소통한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건축 평론가 블레어 케이민은 아쿠아를 이렇게 평했다, “마천루는 대개 직각적인 요소들의 반복으로 되어 있다. 아쿠아는 직각과 반복이 없다. 과자처럼 얇은 백색 발코니들이 매 층 살짝 다르게 밖으로 불룩 튀어나온다. 아쿠아는 코너에서 부드럽게 달리는 층들이 층층이 쌓여 만드는 하나의 감각적인 타워다.”

갱은 아쿠아의 성공으로 요새 미국 주요 도시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에 그녀의 실험적인 초고층 아파트들이 시공 중에 있다. 그녀는 지금 미국 내에서 건축가 딜러 스코피디오와 건축가 빌리 첸과 더불어 가장 잘 나가는 여성 건축가 3인방 중 하나다.

도시는 새로 짓는 건축으로 살기도 죽기도 한다. 실험적인 건축은 자기도 살고, 주변도 살리고, 후세도 살린다. 도시는 생동하고 약동한다. 진부한 건축은 이와는 반대다.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새로 지을 우리의 주거형식은 아파트인가, 아니면 아쿠아인가.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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