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문권모]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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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캐릭터 조건 살펴보면 나의 삶 평가해 볼 수 있어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박 드라마’를 찾아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드라마는 방송 콘텐츠의 꽃이다. 좋은 드라마는 방송사의 수익은 물론이고 위상까지 끌어올린다. 문제는 제작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방송사나 제작사들은 그 나름의 평가기준으로 사전에, 즉 기획단계에서 드라마를 엄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한다. △기획(유사 소재의 다른 작품과 차별점이 있는가) △구성(중심사건 및 대립구도가 명확한가) △캐릭터(주인공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대사(대사를 통해 설정한 캐릭터가 드러나는가) △작가(집필 속도, 작업 방식이 안정적인가) 등의 항목을 다각적으로 본다.

이런 항목들 중 내게 개인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캐릭터였다. 캐릭터, 특히 주인공은 극의 전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어떤 인물이 등장해야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까’ ‘히트작과 실패작은 캐릭터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극(劇) 예술 작품에 대한 거의 모든 평가에 ‘주인공은 의지가 강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니, 그렇다면 어벤저스 같은 슈퍼히어로들만 주인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반박 자료를 찾으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우선 의지가 약한 인물이 주인공인 작품이 거의 없었다. 운 좋게 ‘상대적으로 의지가 강하지 않은’ 인물이 주인공인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내도 대다수가 흥행에 실패한 케이스였다.

아울러 애초에 의지가 박약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극 중반을 넘어설 즈음 꼭 ‘변심’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영화 ‘괴물’의 강두(송강호)는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빌붙어 사는 반백수다. 가게를 보는 대신 낮잠을 자고, 툭하면 손님에게 내줄 오징어 다리를 몰래 뜯어 먹는다. 하지만 딸이 괴물에게 잡혀가자 물불을 안 가리는 투사가 된다.

의문에 결정적인 답을 준 것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란 책이었다. 미국 시나리오 작가들의 대부로 불리는 로버트 맥키는 “우리는 누구나 다 아무리 실현 가능성이 낮더라도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바로 그런 까닭에 정말 아무런 희망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도 없어 보이는 주인공은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썼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일종의 이상적 인간형이다. 우리 중 누구도 나약하거나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인공의 강한 의지가 없다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수 없지 않은가. 너무나 간단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등잔 밑의 현답(賢答)’이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자 또 다른 교훈을 찾을 수 있었다. 드라마 ‘웨스트윙’과 ‘뉴스룸’ 시리즈를 쓴 미국 극작가 에런 소킨은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주인공의 의도와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로부터 태어난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재미있거나, 주인공의 성취가 커지려면 의도와 장애물 사이의 마찰과 긴장감도 커져야 한다. “주인공이 실패를 경험하게 하라”고 한 소킨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은 못 하더라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 인생이란 ‘무대’에 서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분명한 목표를 가졌는가. 의지가 강한가.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얼마나 대단한가. 혹시 나는 사소한 난관에 낙담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한 것은 아니라도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생의 마지막에 나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mikemoon@donga.com
#드라마#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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