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이 코웃음 쳐도 떠안겨주는 쌀 지원, 이런게 ‘퍼주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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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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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9일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에 국내산 쌀 5만 t(1300억 원 상당)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은 2010년 이후 9년 만이다. 이달 5일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국제기구에 800만 달러(약 94억 원)를 공여한 것과 별개로 보름 만에 또 이뤄지는 대북 지원이다. 정부는 “추가적 식량지원 시기와 규모는 추후 결정할 것”이라며 추가 지원 가능성도 열어 놨다.

정부의 쌀 지원 결정은 2·28 하노이 결렬 이후 어떻게든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안간힘이라 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하루 앞두고 서둘러 결정한 것도 향후 북한의 태도 변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대화로 나선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더욱이 미사일 도발의 파장이 가시지 않은 터에 잇달아 대북 지원에 나서는 것은 조급증의 발로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적어도 북한이 쌀 지원을 미사일 도발로 되갚는 일은 없는 분위기에서 이뤄졌어야 한다.

정부는 당초 대북 직접 지원을 검토했으나 북한이 끝내 협의를 거부하자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 지원 방식을 선택했다. 정부가 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직접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지원하는 쌀의 분배 투명성 확보 문제도 남아 있다. 정부는 군량미 전용을 막기 위해 장기 보관이 용이한 벼 대신 도정한 쌀을 지원하고 포대에 ‘대한민국’ 글자도 새겨 전용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했지만 느슨한 국제기구의 모니터링에 맡겨야 하는 처지다.

무엇보다 그간 북한이 보여준 반응은 이번 결정에 큰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북한은 남측의 인도적 지원에 고마워하기는커녕 기고만장 코웃음만 쳤다. 북한 매체는 “부차적 겉치레로 생색을 내보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먼저 애가 달아 주고 싶어 안달하는 모양새니 우리 내부에서 ‘퍼주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한만 바라봐선 안 된다. 주변 국가들은 물론 우리 사회 내부까지 아우르는 대북정책이 돼야 한다.
#세계식량계획#북한 쌀 지원#북한 미사일 도발#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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