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성난 민심에 백기 든 홍콩 행정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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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발 대규모 시위 소식이 국제 뉴스로 집중 보도됐습니다. 9일 100만 명이 시위 대열에 합류한 데 이어 16일에는 200만 명의 인파가 홍콩 거리를 메웠습니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입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 6만 달러가 넘을 정도로 부유한 홍콩에서 무엇이 시민들을 성나게 했을까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범죄인 인도 법안’, 일명 ‘송환법’입니다. 그 법안에는 홍콩인 범죄자를 중국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지 않은 나라에도 송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법안은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달아난 홍콩 청년을 대만으로 송환할 수 없다는 게 발단이 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사진)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정부의 지지 속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송환법에 대한 홍콩 시민의 반감은 상상 이상입니다. 시민들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중국이 반체제 인사를 송환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높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홍콩으로 피신해 살고 있는 민주 인사나 인권 운동가, 반중국 인사를 중국에서 송환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법안 저지를 위한 연대감이 형성된 겁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중국은 50년간 홍콩 체제를 인정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에 두 정치 제도)’를 보장했으나 홍콩인들의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이 통과되면 홍콩의 중국화를 가속화하여 그간 누렸던 표현의 자유, 법치주의와 인권이 후퇴될 것을 우려합니다.

100만 시위대에 화들짝 놀란 람 장관은 15일 법안 처리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백기를 들었습니다. 친중파 인사들과 재계의 반대 목소리가 커진 것도 중요 요인입니다. 부호들이 돈을 빼내 싱가포르 등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이 지속될 경우 홍콩 국내총생산의 30%가량이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법안 연기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16일 시위대 규모는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으로 늘었고 법안의 완전 폐기와 함께 람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람이 뒤늦게 사과문까지 발표했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처지가 됐습니다.

람은 2014년 노란 우산 시위를 진압한 공로로 행정수반에 오른 인물입니다.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그는 시위대를 단호하게 진압하여 중국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2017년 3월 중국 지도부에 의해 간선제 방식으로 홍콩 첫 여성 행정장관으로 선출됐습니다. 평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등 친중 성향을 보인 람은 중국으로부터 자율성을 갖고자 하는 홍콩 민심과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이번에도 람은 시위대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며 민심에 역행했습니다. 홍콩인들의 시민 불복종은 홍콩의 중국화를 막기 위한 처절한 저항입니다. 중국과 홍콩 정부가 과연 성난 홍콩 민심을 어떻게 잠재울지 주목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홍콩 시위#송환법#캐리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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