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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오성윤]스스로와 함께 여행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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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오성윤]스스로와 함께 여행하는 법

오성윤 잡지 에디터입력 2019-06-04 03:00수정 2019-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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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윤 잡지 에디터
늦봄과 초여름 사이. 이맘때 유독 자주 받는 안부 인사가 있다.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셨나요?”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는 햇볕은 올해도 우리가 고통과 무기력과 불쾌감의 구렁텅이(한여름)로 착실히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여름휴가 같은 도파민 덩어리로 머리를 헹구지 않고는 차마 미래를 낙관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더위 탓인지 올해는 5월이 끝나기도 전에 이런 질문을 세 번이나 받았다. “9월쯤 발리에 갈까 싶어요.” 대충 답했는데, 어라, 그런데 매해 이어져온 이 대화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답변에 으레 뒤따르던 부연 질문이 한 번도 나오질 않은 것이다. “누구랑요?” 그러고 보니 요 몇 년 새 여행 동행인에 대한 질문을 받는 빈도가 확연히 준 듯했다. 간혹 나오더라도 이런 형태로 바뀌었거나. “혼자요?” 여행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행위’라는 관념이 눈에 띄게 약해진 것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 소위 ‘혼행’은 세계적으로 급성장 중인 트렌드다. 여행사, 여행 정보 사이트, 보험사의 온갖 조사 결과가 홀로 여행하는 인구의 성장을 유의미한 지표로 짚으며, 여행 상품 플랫폼 클룩은 올해 최고의 여행 키워드로 ‘Solo Travel(혼자 하는 여행)’을 선정했다. 한 여행사 통계에 따르면 1인 항공권이나 상품을 구매하는 국내 이용객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다섯 배가 늘었다.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다. 단순히 1인 경제가 주류로 부상했기 때문이라는 인구통계학적 해석부터 밀레니얼 세대가 ‘관계’와 ‘소유’보다는 ‘개인’과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세대론 관점, 관광산업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한 덕분이라는 제반 분석까지. 무엇이 답인지는 알기 어렵되, 저마다의 지분으로 모두 정답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다만 구분해야 할 점이 있다. 이 ‘트렌드’란 ‘급격한 인기’에 귀속될 뿐 홀로 떠나는 여행 자체가 단발적 유행은 아니라는 점이다. 독행(獨行)은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수행이나 관례 의식의 입지를 점하며 무수한 현자의 예찬을 받은 행위다. 개중에서도 나는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의 표현에 공감한다. “걸어서 떠나는 사람은 익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즐기고 함께 길을 가는 동행이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 외에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입장이 된 것을 즐긴다.” 홀로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라고 믿었던 조건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마음껏 길을 잃을 자유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이국의 공원에서 홀로 아침 러닝을 하다 아름다운 샛길을 발견하고 머릿속에서 모든 오전 일정에 줄을 그을 때, 혹은 내키듯 들어선 바에서 만난 보스니아 청년이 익명의 동양인에게 발칸 반도의 현대사를 논하다 눈시울을 붉힐 때. 그런 순간들의 충만함은 다른 경험으로 얻지 못한다. 나는 감히 이런 여행의 몇몇 순간, 혹은 삶의 단면이 일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믿는다.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도 좋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공유할 뿐, 둘은 꽤나 다른 행위니까. 그리고 그만큼이나, 나의 여행과 타인의 여행도 다른 세계일 것이다. ‘혼행족’이라는 표현으로 이 복잡다단한 욕망을 일반화하고 폄훼하는 몇 언론사 칼럼이 참 게을러 보이는 건 그런 이유다. 혹은 오만해 보이거나 말이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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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혼자 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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