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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장경제 없는 발전은 없다[우아한 청년 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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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장경제 없는 발전은 없다[우아한 청년 발언대]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입력 2019-05-14 14:00수정 2019-05-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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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 정권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영역은 바로 ‘경제’이다. 집권 직후 열린 2013년 당중앙위 전원위원회에서 김정은은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으로 대표되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제시하며 ‘경제’를 ‘핵’보다도 앞세웠다. 북미회담 결렬 직후 열린 선전일꾼대회에서도 “경제발전보다 절박한 임무는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처럼 김정은이 경제 발전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집권에 대한 정당성을 국가의 물질적 발전상에서 찾는 북한 정권의 전통적 ‘국정철학’인, 이른바 ‘인민생활향상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주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끌어내 정권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경제 발전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선행연구들에 의하면 북한 경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오랜 침체를 딛고 연 2~3%가량의 성장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생산성의 증가보다는 비공식 경제와 지역 시장의 암묵적 허용으로 인한 것으로서, 유통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된다.

김정은은 ‘시장경제(market economy)’의 전면 도입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때 시장경제란 단순히 가격을 통하여 자원배분이 이루어지는 시장 메커니즘에 더하여,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제도를 포함한다. 우선 정권의 유지 측면에서 과도한 시장경제의 도입은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또한 김정은은 제도적인 개혁 없이도, 산업의 효율적 자원 배분과 해외 투자 유치만으로 충분히 경제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는 역대 북한 정권이 오랫동안 보여 온 패턴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해 8월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시찰하는 모습. 삼지연군은 북한이 ‘혁명의 성지’라고 선전하는 백두산 일대로 북한이 원산과 함께 경제 개발에 가장 힘쓰고 있는 지역이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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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은 경제를 발전시켜 인민들의 지지를 높이고자 하면서도 인민들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잃고 싶지 않아 한다. 따라서 북한 정권은 경제 개혁 조치를 취할 때 반드시 강력한 통제를 주된 내용으로 포함해 왔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강력한 정치적 통제로 인해 각 경제주체가 경제 발전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에게 경제적 성과와 정치적 통제 사이의 딜레마는 지속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북한 기업의 운영과 관련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기업이 여전히 국가 소유이며, 사회주의적 지배구조를 따르고 있다. 사회주의 기업에서는 전문적인 경영을 담당하는 ‘지배인’ 위에, 당에서 통제를 위해 내려 보낸 ‘당비서’가 상급자로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생산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최근에는 지배인이 종전보다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관찰이 나오고 있지만, 이데올로그인 당비서가 실무적인 기업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비효율성은 발생하게 된다.

또 원자재 시장의 미비나 거시경제적 차원에서의 금융시장 결여 등도 북한 경제의 다른 결점으로 지적된다. 비합리적 제도의 지속과 필수적인 요소들의 부재로 인해 기업의 생산성은 저하되었다. 노동자들은 정상적인 근로활동 시 비공식 경제활동에 참여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직장을 이탈하여 비공식적인 장사나 가내수공업에 종사하고 있다.

비공식 경제 부문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할뿐더러 적은 인원수로 운영된다. 더하여 식품·수공품·간단한 용역 등의 초보적인 생산 활동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통한 지속적인 경제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비공식 경제는 기업의 생산력이 새어나간 결과이다. 따라서 북한 기업들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집약이나 기술발전 모두 이루기 어렵고, 경제발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 주민들은 더 큰 풍요를 누리기보다는 근근이 생계만 이어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제도가 지속되는 한, 이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상인과 손님들로 붐비는 북한 시골의 한 장마당(시장) 모습. 북한의 배급체계가 무너진 뒤에는 주민 대부분이 장마당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 출처 미국의소리

북한 외에서도 근본적인 경제체제의 변화가 결여된 제한적 개혁조치들이 시도되었던 사례가 있다. 1960년대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는 경제 내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시장 사회주의(Market Socialism)’를 시행하였다. 시장 사회주의는 기업수준의 계획을 폐지하여 이윤극대화를 인정했고 제한적인 부문의 가격설정을 허용했다. 하지만 침체 상태인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률 하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업의 소유가 국가이며 통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생산력이 발전되는 방향보다는 종사자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져 비효율성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장이 많이 만들어지고 가격설정의 자유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사유화와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 다른 시장경제적 요소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시장경제체제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현재 북한이 펴고 있는 ‘개혁조치’들은 시장 사회주의의 수준에 미친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처럼 정권이 적극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는 한, 북한 경제 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될 수 없다. 생산성의 발전도 없다. 김정은이 원하는 경제발전 역시 없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경제체제는 분절된 요소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package)로 기능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김정은은 전면적 시장경제의 허용 없이 지역 시장의 개설과 자본 투하 등으로 북한을 발전시키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나, 통제를 수반한 제한적 조치에 그치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만 도입하는 것은 겉치레에 불과하며 유의미한 결실을 맺기 어렵다. 시장 사회주의에 그친 유고슬라비아와 적극적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이 각각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시장경제 없는 발전은 어디에도 없다. 북한 정권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ssp0430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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