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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중 비건, 북한에 한 방 먹었다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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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중 비건, 북한에 한 방 먹었다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하태원 기자 입력 2019-05-09 17:00수정 2019-05-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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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워싱턴 하늘에는 소수지만 비둘기가 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네바 합의(1994년)를 이끌어 낸 로버트 갈루치로 시작된 비둘기 계보는 2005년 9~19 합의의 주역 크리스토퍼 힐을 거쳐 스티븐 보즈워스, 글린 데이비스, 로버트 킹, 조셉 윤 같은 사람들이 이어 받았습니다. 북한과의 협상대표라는 직책 때문에, 그리고 본인의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탓에 비둘기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대북협상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로버트 갈루치, 크리스토퍼 힐, 스티븐 보즈워스, 조셉 윤, 글린 데이비스.


●‘꼿꼿 장수’ ‘버럭 민순’은 어디갔나?

하지만 이 비둘기들은 오래지 않아 ‘둥지’를 잃게 됩니다. 합의서에 서명한 내용도 부인하는 북한이니 협상과정에서 이들이 느꼈을 좌절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한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나치게 옹호한다고 해 ‘김정힐’이라는 힐난까지 받았던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가 이젠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북협상 회의론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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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마지막 ‘비둘기’의 죽음]

현재 대북협상의 최전선에 선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비둘기로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필자의 눈에는 상부의 지시에 충실한 원칙론자로 보일 뿐입니다. 여튼 현재 미국의 대북협상 생태계에서 비둘기는 존재하기 힘든 구조라고 생각됩니다.

워싱턴의 비둘기가 사실상 멸종상태라면 대한민국의 하늘에는 매가 날아다니기 어려워 보입니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북한문제 다루기가 얼마나 편향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입니다.

사실 과거정부에서(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대북정책에는 일종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존재했습니다. 이른바 굿캅-배드캅의 역할분담이 있었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계급장을 뗀’ 토론이 벌어지면서 거중조정이 이뤄지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에는 일사불란함만이 존재할 뿐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전략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정보원을 논외로 친다하더라도 전통적으로 통일부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강조해 온 반면, 국방부는 지나치게 민족주의¤감상주의로 흐르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흐름이 존재했습니다. 외교부는 좀 애매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통일부의 시각보다는 국제사회의 시각(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힘이 강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노무현 정부시절 이른바 ‘꼿꼿 장수(김장수 전 국방장관)’가 나올 수 있었고, 북한인권결의안 반대(또는 기권) 움직임에 항의하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존재감을 발휘한 것도 이 같은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반증입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당당하게 악수하는 김장수 국방장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습으로 ‘꼿꼿 장수’ 라는 별명을 얻었다.(왼쪽 사진)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7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과 관련해 ‘반대’ 또는 ‘기권’ 하는 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라는 진언을 올렸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외교안보라인

박근혜-이명박의 보수정권에는 매파만 존재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국가정보원 루트를 활용한 대북접촉(초강경파로 알려진 김태효 대외전략 비서관이 직접 비밀접촉에 응하기도 했음)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류길재-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경우 매파라기보다는 비둘기파에 훨씬 가까운 모습을 임기 내내 보여줬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매’는 아니라 해도 북한에 할 말을 하는 장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야인(野人)이 된 송영무 전 국방장관 이야기입니다.

송 전 장관은 청와대의 공개경고를 무릅쓰고 지나치게 북한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와 ‘맞짱’을 뜨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남북대화 중에도 안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형 3축 체계(도발원점 선제타격, 한국형 미사일 방어, 대량응징보복) 구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장관이기도 합니다.


●2년간 지속된 ‘북한 바라기’


2017년 11월 북한이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을 즉각적으로 북한을 겨냥한 ‘무력시위’에 나섰는데 현재 문재인 정부 분위기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회의론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훈 국정원장은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북한과의 대화 및 교류협력에만 평생을 몰두해 온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사실상 대북정책의 ‘원톱’의 자리를 차지한 듯 보입니다.

정의용 대통령 안보실장과 팀을 이뤄 2018년 평창올림픽 북한 참여라는 극적반전을 이뤄냈고, 이후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북-미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중개한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서훈-정의용의 논리구조에서 대북압박은 애초부터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기용된 것은 남북관계에서 좀 더 속도를 내라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이 물러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한반도 상황을 반전시킬 화끈한 대북지원을 적기에 성사시키지 못한 탓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외교안보라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훈 국정원장, 정의용 안보실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여러 차례 방북하면서 느꼈던 기류는 북한이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의 임면을 좌지우지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통일부 장관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카운터 파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둘러보고 돌아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보며 북한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현재 우리에게는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만한 지렛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이 핵을 완전하게 폐기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더 서글픈 것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을 움직일 카드도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오지랖’ 운운하며 문 대통령을 쏘아 붙이는 장면을 바라만 봐야하는 상황은 씁쓸함을 넘어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허허 웃어 넘기는 우리 정부의 모습. 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일주일 째 ‘분석 중’이라고 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하태원 채널A 보도제작팀장(부장급·정치학 박사수료)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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