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학원’ 톡톡]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대학생도 직장인도 ‘열공’ 모드…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7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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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만 잘 치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주변만 둘러보아도 대학생, 직장인 너나할 거 없이 ‘열공’ 모드 중입니다. 승진을 위해 어학 시험을 보고, 창업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기도 하죠. 학업과 직장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피아노나 미술학원을 찾기도 하죠. 학원은 더 이상 중고등학생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교육비 지출은 전년보다 1조3107억 원 늘어난 42조2479억 원으로 집계됐는데요.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한 요인도 있지만 주 52시간제 영향으로 학원을 찾는 직장인이 늘어난 까닭이라고 합니다. 학원들이 앞 다퉈 다양한 성일을 대상으로 한 수업과 할인 이벤트를 내놓고 있는 현재. 어른을 위한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학원 문 두드리는 어른들

“직장생활을 한지 이제 2년 조금 넘었어요. 회사생활에 적응을 하고나니 뭔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은 평생직장이라는 게 없다고 하잖아요. 제 주변에도 다들 한 두 번씩 이직을 했거나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친구들은 토익점수나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미리 따두더라고요. 저도 아예 이직 생각이 없는 게 아니어서 어학 점수부터 따놓고 보자는 생각에 토익 2개월 완성반을 끊었습니다. 안하던 공부를 하려니 쉽지 않네요.”-전민경 씨(27·회사원)

“가게가 학원이 몰려있는 골목에 있다 보니 퇴근 시간쯤이면 학원으로 공부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근처 중국어, 일본어 학원에 직장인들이 꽤 다니는 것 같아요. 수업도 늦게까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녁에 학원으로 우르르 들어가고 밤이 되면 또 우르르 나와요. 저희 가게가 몇 시 까지 영업 하는지 묻고 학원 끝나고 꽃 사러 들르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다들 열심히 산다 싶어요.”-최모 씨(40대·꽃집 운영)

“학원에서 토익 강의를 하고 있어요. 주로 20대 수강생이 많지만 저녁 강의는 직장인도 많죠. 종로와 강남 분원은 직장인 수강생들이 많은 편입니다. 대학생들은 주로 취업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전문 대학원 입학이나 편입, 카투사 지원 등의 목적도 있죠. 직장인은 승진을 위해 오시는 분들이 가장 많고 이직이나 해외부서로 이동을 하려고 하는 분들도 있죠. 아무래도 이 분들은 토익에만 올인 할 여건이 안 되기에 등원 했을 때만이라도 공부 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준비해요. 출석 장려 이벤트를 하기도 하고요.”-파고다 어학원 토익 강사 에이프릴 김

“사람인에서 직장인 474명을 대상으로 스펙 준비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72%(345명)가 취업 후에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스펙을 쌓고 있었습니다. 자격증 취득 비율(58.3%·복수응답)이 가장 높았고 직무교육(43.8%), 외국어 회화(35.9%), 공인 어학 점수 취득(25.8%)이 뒤를 이었죠. 스펙을 쌓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책을 구매해서 독학을 한다는 응답이 약 57%로 가장 높았지만 온라인 교육(55.4%)이나 학원을 이용(44.6%)한다는 응답률도 높습니다. 스펙 쌓기의 목적에는 이직이나 전문성 확보, 고용불안 상황 대비, 승진·연봉 인상 등 미래를 위한 투자가 40~60%정도의 비율을 차지했지만 흥미나 퇴근 후 시간활용 등 목적도 10% 정도였습니다.”-취업플랫폼 사람인 임민욱 홍보팀장

“배움, 활력과 자존감 높여줘”

“2년 전에 딸들과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어요. 의사소통은 직장인, 대학생인 두 딸이 해결했죠. 그걸 보면서 한 편으로는 뿌듯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저도 나름 대학까지 다녔는데 외국에 가니 입이 얼어붙더라고요. ‘나도 영어 배워서 다시 와야지’ 말만하다 올해부터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했어요. 이제 3개월 차인데 아직 초급이지만 적응은 됐어요. 처음에는 한 문장 내뱉기가 괜히 부끄럽고 떨렸는데 지금은 옆 사람과 자유 대화하는 5~10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다행인건 저희 반에 저 말고도 50대가 두 명이나 더 있다는 거죠.”-정미자 씨(58·가정주부)

“초등학생 때 춤을 배우면서 흥미가 생겼어요. 대학생이 된 후에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근처에 성인이 배울만한 댄스 학원이 없어서 쉽지 않았죠. 그러다 학원에서 진행하는 댄스 원데이 클래스를 알게 됐어요. 학교 수업 스케줄과 겹치지 않게 신청해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가장 최근에 배운 건 가수 청하의 7rings라는 노래 안무에요. 평소 학교와 집만 오가는데다 자취의 외로움까지 더해져서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 할 때가 많았는데 춤을 배우면서 활력이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졌어요.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보면 기분이 저절로 유쾌해지죠. 한 곡을 다 배우면 뭔가를 해냈다는 소소한 보람도 느껴지고요.”-장하영 씨(23·대학생)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영상 활용을 많이 하잖아요. 저희 회사에서도 홍보영상을 제작해서 회사를 알려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죠. 마침 영상편집을 배워보고 싶던 참에 영상편집 학원을 등록했어요. 아직은 단순한 편집밖에 못 하지만 좀 더 연습해서 여행가서 찍은 영상들로 ‘브이로그(일상을 모은 동영상)’를 만들어보려고 해요.”-김모 씨(30·출판업)

“피아노뿐만 아니라 기타, 바이올린,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우러 오는 성인들이 많아요. 대학생을 포함한 2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직장인들이 주를 이루지만 60, 70대 수강생도 있죠. 악기 하나쯤은 배워두고 취미로 즐기자는 분위기죠.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서 음악으로 힐링하려는 분도 많고요. 어렸을 때 배우고 싶었는데 이제야 찾아왔다는 분도 있어요.”-하한나 씨(30대·엘 뮤직 아카데미 원장)

비싼 학원비에 울상

“승무원을 꿈꾸고 있어요. 관련학과를 나온 게 아니라 항공사 채용 정보가 많이 부족해요. 인터넷 검색도 한계가 있어서 학원을 찾아봤죠. 몇 곳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학원비가 많이 비싸더라고요. 항공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이것저것 들을 수업도 많고요. 심지어 헤어, 메이크업 하는 법까지 돈 내고 배워야 한다니…. 대부분 채용 될 때 까지 다닌다는데 준비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학원비도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혼자 준비하자니 자신 없고 학원을 가자니 비싸서 고민이에요. 어학점수를 올리기 위해 어학원에서 영어와 중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것도 부담이거든요.”-김모 씨(25·취업준비생)

“나이 들면서 뭔가를 배워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미용학원에 다녔어요. 배워서 자격증을 따고 작은 가게를 내는 게 목표였죠. 원래 저는 매직기(고데기)도 잘 못 다루던 사람이라 그런지 배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올림머리를 배울 때가 가장 힘들었죠. 그리고 저보다 나이 많은 수강생은 없어서 틀릴 때 마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자책하게 되더라고요. 여차저차 자격증은 땄지만 아직 가게를 개업할 엄두는 못 내고 있어요.”-최모 씨(44·가정주부)

“퇴근 후 학원에서 중국한어수평고시(HSK) 시험대비 수업을 듣고 있어요. 다들 요즘 영어, 중국어는 기본으로 한다기에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중국어는 10년 전쯤 고등학교에서 제 2외국어로 해본 게 다인데…. 한 주에 3회 수업인데 단어 시험에 나오는 단어를 채 다 못 외우고 가는 날이 다반사에요. 저희 반 수강생은 대부분 대학생들인데 그 친구들은 척척 잘 쓰더라고요. 단어를 못 외우는 날에는 펜만 잡고 있게 되는데 그 때 강사가 옆으로 지나가면 얼마나 머쓱한지 몰라요. 학원을 안가는 날에 퇴근하고 꼭 숙제하고 단어 외우자는 마음을 먹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요. 시험에 합격하면 시험 접수비를 환급해주지만 저는 아마 불가능 할 것 같네요.”-이민석 씨(29·회사원)

혼자서도 잘 배워요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서 한동안 학원에 다녔어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 급하게 다른 일정이 생기는 날에는 수업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석 달 정도 다니다 학원은 포기했죠. 그 때 언니가 학습지 방문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언니를 통해서 일본어 학습지를 몇 번 풀어봤거든요. 양도 많지 않아서 할 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학습지를 신청했고 그걸로 꾸준히 공부를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언니 말로는 요즘에 직장인들도 중국어나 일본어를 많이 신청해서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전모 씨(23·대학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학생이라 수업비용도 부담인데다 아직은 여유 있게 준비하고 싶어서 학원은 따로 등록하지 않았어요. 대신 최근에 인터넷 강의를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것 보다는 혼자서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게 저한테는 더 맞는 것 같아요. 어떤 책들로 공부를 하면 좋을지 검색도 해보고 서점도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찾아보고 있어요.”-김현태 씨(24·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영어 스터디를 만들었어요. 요즘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외국에서 의사소통을 하려면 영어는 필수잖아요. 저도 꼭 배우고 싶었죠. 학원은 엄두가 안 났는데 주변에 마음 맞는 친구들도 있고 영어를 잘 하는 지인도 있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3개월 차에요.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 반 씩 영어 문법책과 해외여행 책 두 권을 가지고 진행합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를 다녀왔는데 짧은 단어 대신 공부했던 문장을 응용해서 말할 수 있었어요. 하다 보니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평소에 단어장을 끼고 살고 필수 표현을 외운 보람이 있었죠. 영어공부가 쉽지만은 않지만 여행지에서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정미정 씨(53·가정주부)

88세 노인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90세 노인이 중학교를 졸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을 절실히 깨닫는 요즘입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학원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불안정한 미래를 대비해 스펙을 쌓는 어른들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한편으로 불안정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음악, 미술 등을 배우며 위안을 얻는 모습은 배워둘만 합니다. 불안감에 휩싸여 학원으로 향하기보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내 현실과 미래를 가꾸는 하나의 도구로 이용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신무경 기자 yes@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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