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2〉한국인은 등산한다, 고로 존재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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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권용득 만화가
근로자의 날, 우리 집 세 식구는 북한산 원효봉에 다녀왔다. 편집자 친구도 동행했다. 처음에는 아이 학교가 근로자의 날부터 그 다음 주 월요일(6일)까지 쉰다기에 제주도나 갈까 했다.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그럴싸한 숙소를 부지런히 검색했다. 몇 시간 뒤 아내는 말했다. “아이고, 피곤하다! 벌써 제주도 갔다 온 것 같네!”

아내는 ‘아이트립(eye trip)’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화창한 5월의 첫날을 방구석에서 보낼 수 없었다. 궁리 끝에 북한산을 가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우리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 편집자 친구의 한마디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북한산은 어디로 가든 바위투성이인데 등산화도 없다고요?”

부랴부랴 등산화를 마련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쓰던 배낭과 스틱도 빌렸다. 구파발역 앞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형형색색 등산 장비로 중무장한 등산객 한 무리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산복까지 미처 챙기지 못한 우리 식구는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참석한 불청객 같았다. 아무리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이라지만 등산 인구가 이토록 많은 데에는 까닭이 있지 않을까. 문득 체코의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저서 ‘몸짓들’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인류 대다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의 일에 도구로서 종사한다. 자신들을 소외시킨 가운데 그들은 세계가 어떠한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 하지 않고, 세계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않는다. 그들은 역사에 수동적으로만 참여한다. 역사를 겪어내는 것이다.”

부정하기 힘든 얘기다. 대부분 ‘무엇을 위해, 왜’ 일하는지 되물을 겨를이 없고, 조직(또는 자신이 속한 세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효과적이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모처럼 쉬는 날 가까운 산이라도 오르는 게 어쩌면 거의 유일한 존재 증명이 되고 만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코스가 점점 가팔라지면서 감쪽같이 달아났고, 나는 “아이고, 죽겠네!” 소리만 연발했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 않다. 꼭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비난받을 일 없다. 말하자면 무엇을 위해, 왜라는 목적과 나의 쓸모로부터 그제야 제대로 해방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등산은 충분히 가치 있다.

원효봉에 올라 찌그러진 김밥을 나눠 먹을 때였다. 주변에는 평상복 차림의 어린아이들이 고양이를 쫓으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우리 집 아이가 말했다. “뭐야? 쟤들은 등산화도 안 신었네? 이 아이들은 원효봉까지 어떻게 올라온 거지?”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하긴, 누군가 등산화를 만들기 전부터 산은 이미 존재했다. 우리를 노예처럼 속박하는 일이 존재하기 전부터 우리가 이미 존재했듯 말이다.
 
권용득 만화가
#근로자의 날#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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