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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희망이 희망고문 된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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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희망이 희망고문 된 2년

박제균 논설주간 입력 2019-05-06 03:00수정 2019-05-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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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意가 나쁜 결과 낳는 일 다반사… ‘우리가 옳다’ 빠지면 방향 전환 못해
‘새로운 나라’ 열망 있었지만… 정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文, ‘한 계파의 대통령’ 기록될 건가
박제균 논설주간
20대인 아들딸과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봤다. 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마블 영화 팬이다. 그런 내게도 이 영화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유별나 보였다. 속칭 ‘스포’를 당하지 않기 위해 영화를 보기 전에는 평소 끼고 살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끊다시피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다 궁금한 점이 있어 물어보려 했더니 ‘쉿!’ 하며 주의하라는 소리만 들었다. 영화관 입장객들에게 자칫 스포가 될 수 있다나.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그 또래들에게 이 영화를 보는 건 일종의 의식인 듯했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어벤져스 시리즈와 함께했던 소년기의 순수와 성장통의 그 어떤 매듭을 짓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 최강의 ‘빌런’(악당) 타노스는 전편에서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절멸(絶滅)시킨다. 정말 스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그 나름의 선의(善意)에서다. 그런데 그 선의가 먹혀들지 않자 이번에는 더 나쁜 선택을 하려 한다….

영화의 흔한 소재가 될 정도로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 나쁜 결과를 낳는 일은 다반사다. 현실을 모르고 일을 벌였거나, 지지고 볶는 세상의 복잡다기한 변수와 충돌하며 일머리가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을 비롯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일 것이다.

그랬을 때, 다시 말해 선의가 나쁜 결과를 초래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민간이든 공공이든 조직이나 개인의 역량이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방향 전환을 한다. 그런데 일의 결과보다는 의도에 매몰돼 ‘선의는 결국 선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증편향에 빠지면 어그러지는 줄 알면서도 밀고 나간다. “구덩이에 빠지면 아래를 더 깊이 파지 말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일이 잘못됐을 때 엉뚱하게 대처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옳다’는 집단 사고에 빠지면 이런 경구(警句)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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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있을까. 지옥이란 무엇인가.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헬조선’이란 단어의 프리즘에 비춰 보면 희망이 없는 곳이다. 마블은커녕 마징가제트에도 감지덕지했던 우리네 소년기에도 지옥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보다 내일, 부모세대보다 자식세대에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롭게 자라난 우리의 아이들은 역사상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더 못살 것이란 불안에 휩싸여 지옥을 말한다.

이들에게 현재보다 미래에, 부모보다 자신들이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요, 우리 정치가 해내야 할 몫이다. 2년 전 우리에겐 그런 희망이 있었다. 국정을 왕조시대처럼 운영했던 권력자를 국민의 힘으로 교체한 뒤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희망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그런 희망과 선의의 장전(章典)처럼 여겨졌다. 문 대통령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런데 정말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한국 외교는 없었다. 우리와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 중국 일본 3국과 한꺼번에 이토록 멀어진 적은 없다. 그렇다고 북한과 가까워진 것도 아니다. 하대(下待)를 당연시 여기는 처지가 됐다. 경제적으로도 주변국들은 성장의 과실을 따먹는데, 우리는 성장률 전망치 하향 기록을 갈아 치우기 바쁘다.

사회적으로는 ‘한 나라, 두 국민’이 될 정도로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사상 유례없이 정치권력이 사법권력까지 좌지우지하며 그들만의 견고한 성벽을 쌓고 있다. 전에는 통합하는 시늉이라도 냈지만 이제는 대놓고 ‘적폐’를 말한다. 대체 그 적폐청산이라는 건 언제까지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릴 텐가.

적지 않은 국민이 2년밖에 안 된 이 정부에 지쳐가고 있다. 그래도 국정을 운영해 보면 달라지겠지, 하며 걸었던 희망은 외려 더욱 선명하게 운동권식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어깃장을 접할 때마다 희망고문이 된다. 2일 청와대 간담회에서 한 원로는 ‘대통령은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정녕 ‘한 계파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 건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적폐청산#한국 외교#경제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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