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53〉페리클레스의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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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아테네가 패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스파르타의 전사들이 워낙 강력해서 단기간에 스파르타를 굴복시킬 수는 없었지만 경제력, 전략적 구도 등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장기적, 거시적 지표들은 아테네를 가리키고 있었다. 더욱이 스파르타의 장점이라는 백병전 능력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듯 독보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파르타 전사의 능력은 남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덕분에 구축한 것이다. 남들도 스파르타를 따라 하기 시작하자 장점을 상실했다. 즉, 장기전으로 가면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유일무이한 장점마저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의 추는 아테네에 불길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서술한 투키디데스는 그 원인으로 걸출한 지도자, 아테네에 승리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었던 위대한 인물, 아테네가 다시는 가져볼 수 없었던 재능, 페리클레스의 요절을 들었다.

페리클레스의 탁월한 능력은 빈부 갈등, 집단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아테네 시민들을 단합시키고, 공동의 목표를 최선의 방향으로 이끄는 능력이었다.

물론 그의 재능은 과장된 면이 있다. 그는 도덕적이고 진실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면 우리는 그를 진정한 포퓰리스트라거나 이중인격자, 엄청난 선동가라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제일 후한 평가는 탁월한 정치공학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는 위대했다. 그가 죽자 아테네는 정말 분열해 버렸고, 전쟁의 승패와 아테네의 미래를 눈앞의 탐욕과 바꿔 버렸다. 지도자들은 이를 설득하거나 조정하려 들지 않았으며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선동하고 국가의 분열을 조장했다. 몇 번이고 승리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지도자와 시민들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

페리클레스는 온갖 수법을 사용했지만, 그 수단을 국가의 분열을 끌어안는 데 사용했다. 이것이 지도자의 1차적인 미덕이자 사명이 아닐까?
 
임용한 역사학자
#펠로폰네소스 전쟁#페리클레스#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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