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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임정 모욕하는 ‘임정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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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임정 모욕하는 ‘임정 100주년’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19-04-10 03:00수정 2019-04-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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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기린다 하면서 임정 없애거나 말아먹으려 한
인물 치켜세우는 自家撞着… 이승만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官製 왕따 놀이, 치졸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와 교보생명 건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리는 10명의 그림 사진 작품이 주초부터 내걸렸다. 인물 선정은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했다고 한다. 있는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 때문에 눈길이 갔다. 이승만이 없다. 어른들이 애들만도 못한 치졸한 왕따 놀이를 하고 있다.

김구는 있다. 임정의 마지막 주석인 김구는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지만 김구와의 오랜 협력관계로 보나, 임정에서의 중요성으로 보나 김구 외에 한 사람 더 있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이승만이다. 안창호도 있고, 심지어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김규식까지 있는데 이승만은 없다.

왜 이승만이 있어야 하는지는 인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그날이 오면’ 전시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중앙 로비에 1921년 1월 1일 임정·임시의정원의 신년축하식 기념사진 확대판이 놓여 있다. 사진 정중앙에 임정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승만은 임정에서 탄핵됐다고 하지만 김구에 의해 다시 주미 외교위원장으로 임명됐고 해방정국에서도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를 받아들이기로 한 데까지는 서로 협력했다. 김구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를 받아들이기로 해놓고 갑자기 돌아선 이유는 김구가 해명해야 했다. 이후 김구의 해명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선정된 인물 중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여운형이다. 그는 해방정국에서 임정이 들어오기 전에 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임정을 말아먹으려 했던 사람이다. 19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전면에 내세운 사람이 여운형이다. 여운형의 건준, 건준을 이은 공산주의자 박헌영의 조선인민공화국 건립 시도가 성공했다면 자유로운 대한민국은 존재하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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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언론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무정부주의자 신채호가 임정이 수립된 해인 1919년 창간한 ‘신대한(新大韓)’ 1, 2, 3호가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주간지는 임정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임정을 폐지하려 했다. 신채호의 집요한 공격에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되고 창조파, 개조파, 임정수호파로 나뉘어 싸우게 된다. 결국 김구가 국민대표회의를 해산시켜 임정을 간신히 유지했으나 이후 임정은 명맥만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여운형과 박헌영이 해방정국에서 임정의 적대자였다면 해방 이전 임정의 적대자는 신채호와 김원봉이었다. 김원봉은 1930년대 김구가 윤봉길 의거 이후 일본 경찰에 쫓겨 상하이를 떠나 유랑하는 사이 조선민족혁명당이란 이름으로 연합세력을 구축해 김구로부터 임정을 탈취하려 했다. 김구가 민첩히 대응해 한국국민당을 창당하고 이청천 세력과 조소앙 세력을 김원봉의 연합세력에서 끌어냄으로써 임정을 지켰다. 당시 임정이 김원봉에 의해 장악되고 해방정국의 건준과 연결됐다면 어찌 됐을지 아찔하다. 영화 ‘암살’에서 김구와 김원봉이 반갑게 만나는 장면은 거짓이다. 충칭에서 두 세력은 임정의 지원자인 장제스(蔣介石)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작했지만 거주지까지 수십 리 떨어져 살 정도로 앙숙이었다.

임정 100주년이 임정을 지킨 사람들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임정을 없애거나 말아먹으려 한 사람들을 기리고 있으니 이런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없다. 굳이 신채호 김원봉 여운형을 기리고 싶다면 임정은 진즉 폐기됐어야 했는데 잘못 살아남아 해방 이후의 역사를 망쳤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다. 그러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임정 100주년은 피해서 기리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정부는 말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라고 한다. 그것이 정말 위대한 역사로 느껴진다면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을 지어준 타고르나 핀란드 민족의 시련과 극복을 그린 ‘핀란디아’를 작곡한 시벨리우스 같은 성취가 나올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하다. 임정을 폄훼하고 폭력투쟁만 치켜세우는 교육을 받은 젊은 예술가들은 비폭력적인 3·1운동이 왜 위대한지 느끼지 못하고 임정 100주년이 왜 위대한 100년의 시작인지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자가당착인지도 모르는 그림이나 생산하는 허수아비가 돼 관제(官製) 왕따 놀이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제대로 임정 100주년을 기념해야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임시정부 100주년#3·1운동#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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