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의 갯마을 탐구]〈25〉바다에 살고 싶은 그대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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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해초랑 굴 조개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청산별곡 중에서)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들은 자신만의 안식처를 꿈꾼다.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여행, 낚시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것도 현실을 잊고 잠시나마 쉬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리라. 반짝이는 물결의 일렁거림, 쪽빛 바다와 연파랑 하늘을 활공하는 갈매기, 멋진 자태를 뽐내는 갯바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장면은 시청자를 대리만족시킨다.

더 나아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귀어(歸漁)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 포클레인 운전기사를 하는 내 처남도 바닷가 삶을 꿈꾼다. 어느 날 낚싯배를 운항하며 해변에서 살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다. 섬에서 자랐고, 지금은 해양문화를 연구하며 살아가는 매형의 조언을 바라는 눈치였다. 바닷가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을 무수히 봐왔다. 필자는 바다를 조사하면서 정착에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관찰했다. 처남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한편으로 만만찮은 일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한 사람의 일화를 들려줬다.

몇 년 전 어촌문화 조사를 위해 창선도로 내려갔다. 이때 알게 된 사람이 배모 씨(45)다. 창선도에서 태어난 그는 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에서 검도 사범을 했으나, 결혼 후 다시 섬으로 돌아와 낚싯배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낚싯배 구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낚시꾼은 선장을 믿고 출조한다. 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이 아니라 날씨와 낚시 포인트, 물때다. 선상낚시에서는 프로낚시꾼도 선장에게 의지한다. 그래서 선장은 프로낚시꾼 못지않은 낚시 실력과 다양한 포인트, 물때와 계절에 따른 물고기의 습성과 종류, 어군탐지기에만 의존하지 않는 감각, 심지어 회 뜨는 기술까지 익혀야 한다. 배 씨는 어촌에서 자랐기에 웬만한 포인트와 낚시 기술은 알았으나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그는 하나씩 습득해 나갔다. 방파제에 텐트를 치고 몇 주 동안 낚시만 한 적도 있었다. 낚시 포인트는 일종의 영업비밀이기에 이웃 간에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틈틈이 아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눈치껏 익혔다. 그렇게 1년 내내 낚시만 한 후에 낚싯배를 장만했다.

즐기는 일이 밥벌이가 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그러나 생업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수많은 어촌을 다니며 귀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봐 왔다. 바다에 대한 지식과 어촌 삶에 관한 정보 없이 귀어해 놓고 어민들 텃세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울타리를 거리낌 없이 활짝 열어주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평생을 선원생활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서울로 이주한다면 막막하지 않겠는가.

필자 역시 언젠가는 바닷가에서 살기를 꿈꾼다. 해양문화 조사를 위해 수많은 어선을 탔다. 직접 그물을 던지고 끌어올렸고, 통발 미끼작업, 그물 손질까지 할 줄 알고, 낚시도 한다. 10여 권에 달하는 해양민속지를 발간했고 논문을 발표하고 글을 쓰는 등 나름대로 해양문화 전문가라 할 수 있지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아는 것과 실제로 산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삶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므로.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바다#귀어#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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