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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이유종]‘별’에 투자하는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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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이유종]‘별’에 투자하는 룩셈부르크

이유종 국제부 차장 입력 2019-03-25 03:00수정 2019-03-25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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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룩셈부르크 우주청 창설 기념식에서 에티엔 슈나이더 룩셈부르크 부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관계자들이 손을 모으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상업위성을 운영한 룩셈부르크는 우주 광물 채취를 미래 전략산업으로 정하고 적극 육성하고 있다. 사진 출처 룩셈부르크 우주청
이유종 국제부 차장
룩셈부르크 동부에 인구 4000명의 작은 마을 베츠도르프가 있다. 국가 원수 앙리 룩셈부르크 대공(64)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베츠도르프성이 있는 곳이다.

이 성에는 특이하게도 인공위성 운영회사 SES 본사가 입주해 있다. SES는 정지궤도 위성 50개, 중궤도 위성 12개 등 인공위성 73개를 운영하는 업체다. 1985년 정부 지원으로 SES가 설립됐을 때 국민은 “황당하다” “대체 위성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며 비판 일색이었다. 34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방송·통신 시장의 급성장으로 인공위성 수요도 대폭 늘었다. 이제 SES는 세계 2위 인공위성 운영 기업 및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를 대표하는 기업이 됐다.

룩셈부르크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상업 위성을 띄웠고 현재 유럽 위성사업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지난해 우주 관련 업무를 전담할 우주청을 설립했고, 최근 ‘우주 소행성에서 니켈 백금 등 희귀 광물을 얻는다’는 구상도 밝혔다. 기술 개발로 위성과 우주선 발사 비용이 낮아지면서 우주 광물산업의 가능성까지 커졌다. 최근 의회도 기업이 소행성에서 채굴한 자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일 대학인 룩셈부르크대에는 올 9월 우주 전공 석사과정도 신설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세계 우주산업이 2040년 1조1000억 달러(약 1247조 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21세기 골드러시’인 이 시장에서 룩셈부르크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개척자 의지를 내세운 데다 틈새시장을 잘 발굴하고 겨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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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2만 달러가 넘지만 19세기 중반만 해도 유럽 변방의 가난한 나라에 불과했다. 국토 면적(2586km²)도 제주도(1848km²)보다 좀 큰 정도에 불과하다. 60만 명에 불과한 인구는 서울의 1개 자치구 규모다. 국토 대부분은 유럽의 강자 독일 및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부단히 먹거리 발굴에 ‘올인’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구조다.

이에 룩셈부르크는 1950년대부터 금융산업에 주목해 투자기금 등 틈새시장을 노렸다. 핀테크, 블록체인 사업에도 비교적 빨리 뛰어들었다. 국명과 같은 수도 룩셈부르크는 아일랜드 더블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과 함께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 ‘세계 금융업의 중심지’ 런던을 대체할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금융업에만 매달리지 않고 우주산업에 주목하고 나섰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우주산업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기 위해 각종 규제를 적극 풀었다. 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개인 및 기업의 세금 부담도 낮은 편이다. 특히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지식재산권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세금의 80%를 면제한다. 각종 금융 규제도 거의 없어 일각에서는 ‘조세회피처’란 비난까지 나올 정도. SES처럼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업은 정부가 지분의 상당 부분을 보유해도 경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일자리가 넘친다. 출산율이 높은 편도 아닌데, 인구도 증가세다. 부족한 일자리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이 대거 유입됐기 때문. 현재 주민 절반이 외국 국적자들이다. 이외에도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이웃 나라에서 매일 20만 명 이상이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한다. 현 추세라면 2060년 인구가 지금보다 약 50% 증가한 87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공무원들도 열심이다. 룩셈부르크 장관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한국도 자주 찾는다. 이들을 자주 만난 한 국내 인사는 “소속 정당이나 정치 이념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미래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한국 정부도 겉으론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진 않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도록 규제를 대폭 풀기보다 남들과 비슷한 전략에다 이름만 ‘첨단’을 남발할 때가 많다. 각종 산업진흥법 또한 후발 주자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때가 부지기수다. 정부의 역할은 사람들이 잘 모이도록 멍석을 잘 깔아주는 것이 아닐까. 호황을 맞았던 산업이 주저앉는 것은 순식간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산업구조를 재빠르게 전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꿈을 꾼 만큼 이룬다.


이유종 국제부 차장 pen@donga.com
#룩셈부르크#우주산업#인공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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