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교조주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드는 청와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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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해군만 日軍 출신 없이 창군”… 군통수권자로서 부적절 발언
친일 논란·韓日관계 역주행… 북한과 脫원전은 무조건 善
한편만 들면 北-美 중재 자격 잃고… 미세먼지, 에너지 정책은 손 못 대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문재인 대통령은 5일 해군사관학교 생도 임관식에서 “(해군은) 일본군 출신이 아닌, 온전히 우리 힘으로 3군 중 최초로 창군했다. 해군의 역사가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라고 말했다. 해사 임관식에서 해군을 띄워주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었다고 해도 부적절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우리 군, 특히 육군과 공군 창설 과정에서 신생국의 군인 자원 부족 등의 이유로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 중국군 등 다양한 출신이 참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돌아보면 친일 청산이 깔끔하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으나 바로 이 군이 6·25전쟁에서 피를 흘렸고 베트남전 참전으로 근대화에 기여했으며 이후에도 우리 안보의 든든한 보루였다. 70년이 지난 지금 ‘태생의 비밀’을 따지는 것이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더구나 문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다. 해군에 우리 국군의 정통성이 있다는 식의 발언은 군의 단합은 물론 전군(全軍)의 지휘통솔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이제 와서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 분열을 일으키자는 것이 아니다. 친일 잔재 청산도 미래지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광복된 지 74년이 지나 소위 친일 논란 인사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터에 잔재 청산 운운할 때부터 미래는 달아나고 과거를 헤집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트남에 근무했던 외교관의 회고. “베트남을 방문하는 한국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사과하려고 하면 정작 베트남 외교부에선 뜨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미국과 싸워 승리한 전쟁인데, 왜 미국의 용병이었던 한국이 사과하느냐’는 식이다. 당사국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데, 제발 사과 좀 받아달라고 교섭하느라 난감했다. 과거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베트남식 실용주의가 때론 무서울 정도였다.” 하지만 베트남보다 잘사는 한국에선 친일 교가 논란에 이어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 논란마저 불거질 기세다. 그럼 이제 애국가도 바꿔야 하나.

사물과 사건에는 대체로 양면이 있다. 그 양면을 함께 보는 것이 균형감이고, 그 균형감은 난마처럼 얽힌 국정(國政)을 풀어나가는 데 필수적인 자질이다. 한 면만 보거나 보려 해선 국정은 더욱 꼬일 뿐이다. 국정 경험이 쌓일수록 균형감이 느는 게 상례인데, 웬걸 문재인 청와대는 역주행하는 느낌마저 준다. 친일 논란과 한일관계만 해도 이젠 국민 통합과 양국의 미래를 균형 있게 볼 때도 됐는데, 더욱 외곬으로 치닫고 있다.

대북정책은 어떤가. 미국과 북한의 중재자를 자임하며 비핵화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는 듯하더니, 아예 이젠 노골적으로 북한 편에 선다. 한쪽 편만 들어선 중재가 성립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코리아 패싱’이 횡행하는 북-미 협상에서 한국이 중재자 역할마저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자칫 북핵 문제가 재앙적 상황으로 번지는 경우에도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세먼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탈원전이라는 금기를 건드리지 못하니까 에너지 정책이 미세먼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올 수 없다. 원인에 대한 정밀 분석 없이 스마트한 대책이 나올 수 있겠나. 북한과 탈원전은 무조건 선(善)이고, 털끝만 한 친일도 악(惡)이라는 식으로 한 면만 보려는 게 바로 교조주의요, 원리주의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은 해양과 대륙에서 일본과 청이라는 신흥 강국이 굴기하는데도, 망해 가는 명나라만 바라보다 임병양란(壬丙兩亂)을 당하고 패망의 길로 저물어갔다. 심지어 명이 멸망한 뒤에도 친명반청(親明反淸)의 교조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대부들은 명 황제를 모시는 만동묘(萬東廟)까지 지어 제사를 지냈다. 만동은 ‘천자를 향한 제후의 충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나왔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주중 대사 시절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신임장을 제정한 뒤 방명록에 ‘만절필동’이란 문구를 적어 논란을 불렀다. 노 실장이 비서실을 ‘접수’한 이후 청와대가 전보다도 경직돼 가는 느낌을 받는 건 우연일까.

일이 안 풀릴수록 적확한 진단을 내놓고 유연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청와대는 북핵과 외교, 경제와 국민 통합 문제가 꼬일수록 어깃장을 놓고, 그러면서 점점 더 교조주의의 늪에 깊이 빠져드는 듯하다. 곧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해군#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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