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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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영 패션디자이너
강진영 패션디자이너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보여주면, 누구나 ‘모자로군’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골프, 정치, 넥타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그 어른은 아주 분별 있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매우 흐뭇해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패션디자이너의 삶이 대체 어떤 계기로 바뀌게 되었나요?” 지인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이다. 2008년부터 10여 년간 옷을 만들지 않고 있다. 뉴욕과 서울에서 매 시즌 패션쇼를 진행하기 위해 수만 벌의 옷을 제작해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다. 패션디자이너인 내가 왜 옷을 하지 않거나 또는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선물로 받은 어린 왕자에서 그 대답을 찾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인 ‘나’가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서 온 소년 어린 왕자와 있었던 일들을 그린 책이다.

‘나’는 여섯 살에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림을 본 아이들과 어른은 매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린 왕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평가했지만, 어른들은 모자 그림을 그리는 시시한 일 말고 물리나 수학에 흥미를 가져보라고 했다. 고정된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숫자로 정확하게 측정된 것만이 가치의 척도인 어른들의 관습에 의한 충고였던 것이다.

가시적인 결과에 고무돼 스스로 내린 정의로 나만의 사고에 갇혀 습관처럼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무엇이건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지는 공급 과잉의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일까? 상업적인 관점으로 데이터에 의존해 현실적으로 안전한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획일적이고 수동적이며 타율적인 생각의 틀에 갇혀 보아뱀을 모자라 판단하는 어른이 되기 싫은 까닭에 패션디자이너로서의 또 다른 시작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접하고 사물을 바라보려 한다.

강진영 패션디자이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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