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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글로벌 두산 기틀 다진 ‘침묵의 거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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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글로벌 두산 기틀 다진 ‘침묵의 거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변종국 기자 입력 2019-03-05 03:00수정 2019-03-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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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병 그룹 초대회장의 장남, 말단 입사… 청소하며 직원과 어울려
평소 “지키지 못할 말은 않는다”
‘소비재→산업재’ 사업재편 주도… “6·25 참전이 일생 최대의 자랑”
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8월 창업 100주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두산그룹제공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했다. 향년 87세. 두산그룹은 4일 “박 명예회장이 가족이 모두 자리한 가운데 3일 저녁 편안하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가족장 형태로 3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과 영결식은 7일,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

박 명예회장은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1932년에 태어났다.

고인은 1960년 4월 한국산업은행 공채 6기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한 부친의 뜻에 따른 것이다.


1963년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하면서 두산그룹에 합류했고, 공장을 청소하거나 맥주병을 씻으며 직원들과 어울렸다. 한양식품 대표,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이 된 고인은 “직원들이 일생을 걸어도 후회 없는 직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한국 기업 최초로 연봉제와 토요 격주 휴무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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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타계한 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68년 6월 서울 금천구 두산로 옛 한양식품(두산음료 전신) 공장에서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코카콜라 제품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1991년 회장직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준 고인은 100주년을 3년 앞둔 1993년에 두 번째로 회장이 됐다. 그는 회사를 소비재 기업에서 산업재 기업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간판 사업인 OB맥주를 매각했다. 당시 “나에게도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이른바 ‘걸레론’을 펴며 알짜 기업을 매각해 재계에 화제를 뿌렸다. 고인이 진두지휘해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덕분에 두산그룹은 2000년대에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며 새 도약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박 명예회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해군에 자원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암호 취급 부서에 배치돼 함경북도 청진 앞바다까지 북진하는 작전에 참여한 그의 공적은 60여 년이 지나서야 알려졌고, 2014년 5월 6·25전쟁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고인은 생전에 “참전용사였던 것이 내 일생의 가장 자랑스러운 기억”이라고 했다.

고인은 재계에서 ‘침묵의 거인’으로 불렸다. “내 위치에서 말을 많이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기 때문에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1974년 합동통신사(현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같은 해 한국신문협회 이사와 국제언론인협회(IPI) 정회원이 됐다. 프로야구단 OB베어스를 창단하고 중앙대 이사도 거쳤다. 고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유명했다. 3년간 암 투병을 했던 고 이응숙 여사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일본에서 한 달간 치료받을 때 동행해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간병했다.

유족은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 지원 씨(두산중공업 회장), 딸 혜원 씨(두산매거진 부회장)가 있다.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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