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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뷰]“요리 본고장도 홀린 맛… 한식으로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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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뷰]“요리 본고장도 홀린 맛… 한식으로 이어갈 것”

리옹=동정민 특파원 입력 2019-02-25 03:00수정 2019-02-25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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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유일 ‘한국인 미슐랭 식당’ 이영훈 셰프
이영훈 셰프가 식당 주방에서 대표 시그니처 메뉴인 간장소스가 들어간 멸치 육수 푸아그라 요리를 만들고 있다. 리옹=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920년부터 발간된 빨간색 표지의 미슐랭 가이드. 이 책에 이름을 올리는 건 세계 모든 요리사들의 꿈이다. 특히 미슐랭의 본고장 프랑스에서는 매년 1월 말∼2월 초 그해 어떤 식당과 요리사가 미슐랭 별을 받았는지에 전 사회의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달 21일 발간된 ‘미슐랭 가이드 2019 프랑스편’에는 총 632개의 식당이 등장했다. 이 중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유일한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다. 프랑스 제2도시 리옹에 있는 이영훈 셰프(35)의 ‘르파스탕’(Le passe temps·기분전환). 이 식당은 2016년 이후 4년 연속 별 1개를 유지하고 있다. 2009년 2월 프랑스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면서도 프랑스에 온 지 정확히 10년. 이제 프랑스인이 극찬하는 미슐랭 셰프가 된 그를 최근 리옹에서 만났다.》
 
―미슐랭 압박감은 얼마나 큰가.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 별을 받았던 2016년엔 발표 사흘 전 미리 귀띔을 받았다. 이후 연락이 없으면 별을 유지하는 것이고 오히려 떨어지면 연락을 준다더라. 나도 스트레스가 심해 오히려 미슐랭에서 연락이 없기를 바란 적도 있다. 지금 리옹에만 식당이 무려 약 3000개나 있다. 이 중 미슐랭 별을 받은 가게는 단 16곳. 바로 옆 식당도 한때 2스타였고 20년 가까이 별을 유지했는데 올해 탈락했다. 그만큼 경쟁이 심하다.”

―누가 심사위원인지 진짜 모르나.

“정말 모른다. 매년 9∼12월에 평가단이 온다는데 전혀 알 수 없다. 일반 식객과 똑같이 식사비를 내고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으니 어떻게 알겠나.”

―별을 단 뒤에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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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늘어나고 대기자도 많아졌다. 까다로웠던 은행 대출도 보증 없이 바로 해주더라. 특히 ‘존경의 시선’이 느껴진다. 과거 동양인 요리사가 프랑스 음식을 한다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주변 프랑스인이 ‘동네의 자랑’이라며 나보다 더 좋아해준다. 2016년 처음 별을 달자 ‘3스타 셰프’로 유명한 전설적 요리사 알랭 뒤카스와 고(故) 폴 보퀴즈가 직접 축하 편지까지 보내줬다. 리옹 내 선배 미슐랭 셰프들은 출근하다가 식당 문을 두드리며 축하를 하더라. 큰 감동을 받았다.”

―‘폴 보퀴즈’ 요리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교육과 뭐가 달랐나.


“매우 체계적이다. 매주 주제 1개를 정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그 요리만 실습하고 탐구한다. 폴 보퀴즈 식당에서 인턴을 할 때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인간문화재 격인 명장 3명을 만났다. 요리 경력이 각각 약 40년에 달하는 그들이 직접 고기와 생선을 굽고 소스를 만들더라. 내가 경험한 한국 유명 셰프 몇 명은 음식을 내보내기 전에 육안으로 확인하고 “몇 번 테이블로 보내”라는 지시만 했는데…. 지금 나도 직원 중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 당연히 고기와 생선도 직접 굽는다.”

―파리도 아닌 리옹에 창업한 이유는….


“졸업 후 파리 미슐랭 2스타 식당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내 식당을 하고 싶었다. 지금 식당 운영을 총괄하는 아내에게 ‘손님 5명만 받더라도 내 이름을 걸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다. 내가 하는 프랑스 요리를 프랑스인이 어떻게 평가할지 정말 궁금했다. 개업자금을 빌리러 안 가본 은행이 없다. 체류 자격도 확실치 않은 외국인 학생에게 큰돈을 대출해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2013년 7월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프랑스인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아쉬움에 슬펐다. 출국 직전 우연히 새로운 은행을 발견했다. 그 은행 지점장이 ‘전에도 당신 같은 중국인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며 흔쾌히 대출해줬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다. 돈을 아끼느라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사과 한 개도 제대로 못 사줬다.”

―언제 성공을 확신했나.

“2014년 4월 11일 개업 날 첫 손님은 40대 여성 둘이었다. 다짜고짜 ‘초밥을 달라’고 했다. ‘여긴 아시안 레스토랑이 아니라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했더니 ‘당신이 아시아인이니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화도 났지만 일단 초밥 재료가 없어서 돌려보냈다. 며칠 후 리옹의 유명한 음식 블로거가 왔다. 그가 호평했고 지역신문에도 크게 보도됐다. 특정 메뉴가 원하는 수준의 맛이 안 날 때는 모든 직원을 주방에서 다 내보내고 혼자 죽어라 매달린 적도 있다. 무려 두 시간 만에 내놓은 그 음식이 대히트를 쳤다. 개업 3주 만에 26석이 꽉 찼다.”

그의 식당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다. 음식은 계절에 맞춘 제철 음식만 고수하고 손님들은 코스에 나오는 음식 수만 시킨다. 메뉴 대신 ‘이영훈’이란 셰프 이름만 믿고 오는 셈. 대표 메뉴는 멸치 육수에 넣은 푸아그라다. 직접 맛을 보니 개운한 한국 국물 맛이 느껴졌다.

―프랑스 음식에서는 보기 힘든 맛이다.

“멸치 육수와 간장이 푸아그라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대구를 요리할 때 동치미 국물도 쓴다. 한국 음식이 프랑스 음식과 잘 어울린다.”

―미슐랭 2스타에 도전할 생각은….

“당연히 도전하고 싶다. 프랑스로 올 때 딱히 요리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명색이 프랑스 요리를 하는 내가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를 먹어도 본토에서 만든 것을 먹어봐야지’ 싶었다. 이제 더 큰 도약을 꿈꾼다. 미슐랭 별을 받고 한국에 가니 친분이 없는 셰프들도 ‘프랑스에서 한국인 셰프도 별을 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감사하다’고 하더라. 내가 별 두 개를 받으면 다른 한국인 셰프가 별을 받는 데도 도움이 될 거다. 다른 한국인이 프랑스에서 별을 받으면 당장 식당 문을 닫고 가서 밥과 술을 사주며 축하해 주겠다.”

―곧 비빔밥 가게도 연다고 들었다.

“옛날부터 한국 식당을 꼭 해보고 싶었다. 한국 음식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이 엄청 늘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비빔밥을 좋아하니 종류별로 특색 있게 만들어 보겠다.”
 
리옹=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한국인 미슐랭 식당#이영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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