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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64〉‘현명한 답’ 말고 ‘진솔함’으로 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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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64〉‘현명한 답’ 말고 ‘진솔함’으로 대하라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입력 2018-11-14 03:00수정 2018-1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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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잃은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이들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낀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렵고 고통스러운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슬픔을 말로 표현해 내는 것이 서툴고 미흡하다. 그러다 보니 그 표현이 어른과 같지 않다.

그러나 표현의 형태는 다르지만 가족의 사망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비현실감이라든가 슬픔, 절망, 죄책감 등은 어른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당황해서 배가 아프기도 하고, 숨을 잘 쉬지 못하기도 하고, 잠을 못 자기도 한다. 자기 방에서 조용히 있기도 하고, 마치 슬프지 않은 것처럼 놀기도 한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매사 화를 내기도 한다. 모두 아이 나름대로 슬픔을 이겨내고, 슬픔과 맞서 싸우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가 가족을 잃었을 때 표현하는 슬픔을 어른들의 시각으로 본다.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이가 슬프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쓰는 말이 “겨우 ○살인데 뭘 알겠어요” “이제 ○○이에요. 잘 극복해 낼 거예요” 등이다.

가족을 잃은 아이가 슬픔을 잘 극복해 내고 이겨 내게 도와주려면 무엇보다도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네 살짜리 아이가 느끼는 슬픔의 표현 방식이 마흔 살이 된 성인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네 살 된 아이는 부모가 사망했을 때 뭔가 굉장히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이때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해서 도와주지 않으면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이 느낌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아홉 살 된 아이는, 겉보기에는 어른보다 더 빨리 극복해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부모가 사망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는 그것이 자신의 삶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가족상을 치르고 어른이 일터로 돌아가듯 말이다. 하지만 어른들도 일상으로 돌아가도 슬픔이 쉬이 극복되지 않듯 아이도 그러하다. 죽음에 대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아이에게 현명한 답을 주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주의한다. 또 대화를 나누고 나면 아이가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와 대화할 때 이야기의 초점이 이 상황에서 느끼는 아이의 경험이나 기분에 있기보다는 부모 자신이 얼마나 더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하고 현명해야 되는지에 맞춰져서 오히려 아이와의 대화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런 가족의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누가 누구보다 현명해야 될 필요는 없다. 아이와 어른은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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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고, 또 할 수도 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이 문제가 아이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고 아이 나름대로 이것을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는 의미이다. 아이가 반복해 질문을 하면 그때마다 명확하고 분명하며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고, 또 해 주고, 또 해 주어야 한다. 한쪽 부모를 잃었다면 아이는 남은 부모가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하면서 늘 곁에서 지켜 줄지가 가장 불안하다. 일관된 감정 표현으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부모와 아이가 각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부모라고 어른스럽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엄마도 매일 밤 슬퍼서 운단다” 해도 된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진솔함이다.

좀 큰 아이들이나 10대 아이들은 혼자 있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가족을 벗어나서 혼자 있으면서 이런 상황을 좀 정리하고, 슬픔을 극복해 내려고 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은 허락해 주도록 한다.

아이들은 흔히 세상을 떠난 부모나 형제를 상징적으로 대체할 어떤 물건이나 대상을 찾기도 한다. 이런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세상을 떠난 부모나 형제가 자꾸 생각날까 봐 그 사람과 관련된 물건을 없애거나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가 어떤 물건에 의미를 두어 가지고 싶어 하고 가까이 두고 싶어 하면, 그 마음을 존중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가 이 슬픔을 잘 다루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부모#가족#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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