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이정호]훈민정음 서체로 직인 만들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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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한국전각협회 관인위원장
이정호 한국전각협회 관인위원장
도장, 인감이라고도 불리는 인장(印章)은 고려시대부터 왕과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개인이 사용할 만큼 대중화됐다. 국가의 인장만을 따로 관리하는 관직인 인부랑(印符郞)을 두고 나라의 인장도 관리했다. 과거에 급제하면 합격증에 국가 인장을 찍어 주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예조에 속했던 계제사(稽制司)가 의식과 제도, 학교 등의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관인을 제작했고 임금의 허락을 받아 사용했다. 조선왕조의 활발한 인장문화는 현재까지 이어져 지난해 10월에는 조선왕실 어보와 왕후의 옥새, 어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 역사에 인장문화가 화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1960년대 초부터 전통적인 인장 역사의 맥이 끊겼다. 그것은 인장문화가 한자에서 한글로 바뀌면서 당시 정부에서는 관인(직인)에 한글 서체에도 없는 한글을 한자체인 전서체로 쓰도록 정례화하고 특별한 감수도 없이 50여 년간 관에서 사용했다. 알아볼 수 없이 구불구불하게 쓰인 한글 전서체 직인은 읽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2011년 행정자치부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서체를 쓰도록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 일부 지자체의 직인은 참으로 가관이다. 지자체 직인 담당자들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서체를 잘 몰랐다. 그래서 엉뚱한 서체로 직인을 새겨 사용하기도 했다.

한글 서체는 다양하다. 이 가운데 한글 제자 원리가 뚜렷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서체인 해례본체는 자음과 모음의 관계가 반듯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지자체는 전문지식이 없는 작가나 도장 가게에 직인을 맡기고 출처가 불분명한 서체를 활용해 직인을 만든다. 서체의 출처가 불명확한 직인이 사용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실정이다. 참고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서체로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 등 과학적으로 다듬어진 훌륭한 우리 한글 서체가 분명 존재한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런 전통적인 서체를 활용해 직인을 만들어야 직인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훈민정음 당시의 서체인 ‘훈민정음 해례본체’의 직인 사용을 공표하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관인(직인)을 관리하는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민간인 전문가를 배치해 검증한 뒤 사용해야 한다. 나라를 상징하는 국새와 관인(직인)은 국가의 품격을 의미한다. 역사를 지켜낸 후손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체의 관인(직인)의 사용은 분명 뿌리 깊은 인장문화의 정체성을 되찾고 올바른 인장문화를 정립하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정호 한국전각협회 관인위원장
#인장#한글 서체#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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