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기자의 지금, 여기]“‘철아, 잘 가그래이’… 얼음물 속 아버지 오열 장면 가장 슬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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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987’ 감독 장준환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1987’ 감독 장준환. 그는 “30년 전 6월항쟁에 참여하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영화를 만드는 내내 노심초사했다”며 “실화를 소재로 하다 보니 분위기와 공기까지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1987’ 감독 장준환. 그는 “30년 전 6월항쟁에 참여하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영화를 만드는 내내 노심초사했다”며 “실화를 소재로 하다 보니 분위기와 공기까지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전승훈 기자
전승훈 기자
《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1987’은 민주화의 기폭제가 된 6월 민주항쟁 과정에 참여한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과 용기를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한 영화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객이 많다. 이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48)을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지구를 지켜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같은 독특한 장르 영화를 해왔는데,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운명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5번째 수정 원고까지 나와 있던 시나리오를 연출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처음엔 고민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분수령이었던 6월항쟁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삶에 대한 본질적, 실존적 고민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이슈를 등한시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결혼해서 일곱 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까 하는 부분도 점점 고민이 됐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첫 느낌은….

“굉장히 독특한 구조의 스토리였다. 대공수사처장 박처원이라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적대적 인물)를 하나의 축으로 놓고, 그 대척점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결국 영화를 본 관객에게 당신이 바로 이 시대의 주인공임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상상을 했다. 6월 민주항쟁은 누구 하나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일이 이뤄질 수 없었던 절묘한 사건이었다. 시나리오를 그렇게 억지로 쓰려 해도 어렵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씨 부친이 유골을 뿌리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씨 부친이 유골을 뿌리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6월 항쟁은 기적 같은 드라마”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은데….


“영화를 만들 때 사실을 위주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죽어가고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같이 울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얼어붙은 강물에 아들의 유골을 뿌리는 장면이다. 소리 내 울지도 못하던 아버지가 ‘잘 가그래이!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통곡하며 던진 미안함과 설움이 담긴 한마디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 장면을 찍을 때 심정은 어땠나.

“당시 계절을 재현하기 위해 임진강 얼음이 녹기 전인 2월에 촬영했다. 원래 설정은 유골을 모아서 하늘에 뿌리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포기해야 했다. 연출자로서 굉장한 패닉이 왔다. 그 대신 강물에 유골을 넣어서 보내드리는 것으로 설정을 바꿨다. 차가운 얼음물이라 유골이 흐르지 않고 뭉쳐서 떠다녔다.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가 얼음물 속에서 오열하는 장면을 정신없이 찍었다. 나중에 촬영 화면을 본 컴퓨터그래픽(CG) 담당 스태프가 ‘와, 이거는 진짜 몇억 원짜리 미술인지 모르겠다.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정서가 담겼다’고 말해줬다.”

장 감독은 당시 동아일보 사회면 현장칼럼 ‘창(窓)’에 실린 ‘철아, 잘 가그래이’(1987년 1월 17일자) 기사를 여러 번 읽고 이 장면을 구상했다고 한다.

“사건기자가 쓴 ‘창’은 기사만 읽어도 눈물이 나왔다. 현장을 굉장히 객관적으로 스케치만 했는데도 너무나 감성적이고 글도 굉장히 좋았다. 기사 제목으로 뽑힌 ‘철아, 잘 가그래이’는 6월 민주항쟁 당시 플래카드로 등장할 정도로 사회적인 반향이 컸다. 현장을 지키는 기자 정신이 사회를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지 우리 국민들에게 새삼 깨닫게 해주는 기회였다.”

“보도지침 맞선 동아 기자들의 쾌거”

―영화 속에는 정부의 보도 통제에 맞서 고문의 진상을 밝히는 기자들이 나온다. 윤 기자(이희준)는 어떤 캐릭터인가.

“동아일보 윤 기자는 경찰이 단순 쇼크사로 발표했을 때 치열하게 계속 끝까지 취재해 물고문 사망에 관한 진실을 밝혀낸 시대의 기자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 사건을 밝힌 특종은 고(故) 윤상삼 기자뿐 아니라 동아일보 사회부의 수많은 기자의 치열한 노력이 이뤄낸 쾌거였다. ‘1987’에는 검사, 교도관, 의사 등 워낙 많은 인물이 나오기 때문에 ‘윤 기자’를 대표 캐릭터로 만들었다.”

―영화에 보면 사회부장(고창석)이 보도지침이 적혀 있는 칠판을 지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의 하나다. 이제까지 답답하게 옥죄고 있었던 정권의 언론탄압(보도지침)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순간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실제 동아일보는 부장의 지시로 특별취재반을 구성해 고문 추방 캠페인 기사를 썼다.”

―당시 언론 상황은 어떻게 재현했나.

“동아일보사 자료실에서 당시 수많은 지면과 사진을 통해 고증했다. 그중에는 윤상삼 기자가 얼마나 치열하게 취재했는지 집에 못 들어가 옥상에서 면도를 하거나, 반팔 속옷만 입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윤 기자가 면도하다가 와서 취재하는 장면도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예산상의 한계 때문에 동아일보 편집국을 재현한 세트에서 미술 세팅을 바꿔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서 중앙일보 편집국 장면도 찍었다.”

―30년 전의 이야기라 직접 체험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당시를 재현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고전 사극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 영화는 팩트와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저거 가짜야’라고 보기 시작하면 드라마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시대의 분위기와 공기까지 그대로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장소 헌팅을 다녀보면 3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은 거의 없었다. 명동거리나 연세대 앞 같은 곳은 거대한 오픈세트를 지어서 촬영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았던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도 실제 가보니 너무 좁아서 촬영이 불가능해 세트를 제작했다.”

―박 처장은 중심축을 이루는 악역이지만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


“박 처장은 반공이라는 확고한 자기 신념이 있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히스토리가 있고, 바닥이 단단한 악인 캐릭터가 더 무섭다. 그가 북한에서 지주 집안 출신이었고, 혈혈단신 월남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전쟁과 이념의 갈등 속에서 커다란 공포들을 체험해 왔다. 그것이 왜곡되고 변형돼 나타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1987은 우리의 오늘 비추는 거울”

―영화 속에서 이한열 열사(강동원)와 87학번 여대생 연희(김태리)가 연인으로 나오는데….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는 실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면 6월항쟁이라는 큰 카타르시스를 만나게 되는 선물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연희가 필요했다. 연희는 이 열사가 ‘나도 가족을 생각하면 그러고 싶지 않지만 마음이 아파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 사이의 로맨스보다는 이런 얘기가 사실은 핵심이다.”

장 감독은 “처음에는 이 영화가 제작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적처럼 영화가 만들어졌다”며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이렇게 작게 쓰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또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내인 배우 문소리 씨도 영화에 도움을 주었나.

“아내는 지난해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장편영화로 감독 데뷔한 바 있다. 군중 장면에서 연출에 많은 도움을 줬다.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고 하는 장면에서 본인의 경험을 살려 잘 디렉팅해 주었다. 마지막에 시청 앞 광장에서 연희가 버스 위에 올라가 군중을 볼 때 누군가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선창하는데, 그게 아내의 목소리였다.”

―영화에 보면 유독 거울이 나오는 장면이 많다. 거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가 1987년을 잘 정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순수하고 치열했던 사람들의 희생과 용기를 보면서 2018년 우리의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6월의 광장에서 외쳤던 구호와 함성, 열사의 뜻을 우리가 과연 이루어냈는지. 30년 전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부유해졌지만 마음도 그만큼 풍요로운지. 왜 이렇게 우리 삶이 팍팍하고, 쓸쓸하고, 외로운지. 왜 이렇게 서로 분열돼 날을 세우고 부딪치는지. 우리는 현재 어디에 서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이 영화를 통해 되돌아봤으면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화 1987#감독 장준화#6월 민주항쟁#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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