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주]“인간들이여 보이는 것만 보지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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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의 오브제, 앵무새 ‘지지’의 눈으로 본 ‘소통&전시’

최근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만난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본명 조성진). 그는 22일까지 이곳에서 ‘When Two Galaxies Merge(두 개의 은하수가 만날 때)’란 전시를 하고 있다. 다양한 오브제를 콜라주처럼 전시장에 배치한 그는 “관람객의 머리에 개별적인 각각의 스크린을 띄우고 싶다”고 말했다. 복숭아와 구슬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사진=최혁중 sajinman@donga.com·그래픽=김수진 기자
최근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만난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본명 조성진). 그는 22일까지 이곳에서 ‘When Two Galaxies Merge(두 개의 은하수가 만날 때)’란 전시를 하고 있다. 다양한 오브제를 콜라주처럼 전시장에 배치한 그는 “관람객의 머리에 개별적인 각각의 스크린을 띄우고 싶다”고 말했다. 복숭아와 구슬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사진=최혁중 sajinman@donga.com·그래픽=김수진 기자
나는 양아치와 살고 있는 앵무새 ‘지지’다.

양아치의 본명은 조성진(47). 저명한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2010년에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는 요즘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When Two Galaxies Merge(두 개의 은하수가 만날 때)’란 전시를 하면서 나를 오브제로 두었다. 그래서 난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양아치의 집을 잠시 떠나 에르메스의 새장 속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사람들은 어둑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개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다. 시각적으로, 무엇보다 청각적으로 혼란스럽다. 복숭아와 구슬, 심벌즈가 설치된 곳곳에서 잡음 같은 전자음이 흘러나온다. 양아치는 나 지지 말고도 ‘배배’ ‘딩딩’ ‘동동’ ‘댕댕’ 이렇게 그가 이름 지은 앵무새들과 함께 산다. 인간이 감지하는 소리와 새가 감지하는 소리는 다르다고, 인간은 왜 그토록 ‘보는 것’에만 매달려 왔냐고 양아치는 얘기한다.

그는 2년여 동안 우리 앵무새들에게 여러 다른 음역대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우리가 반응하는 소리를 찾고 있다. 그가 말하는 두 개의 은하수는 시각과 청각, 작가와 관람객일 수도 있다.

에르메스와 양아치. 양아치가 에르메스 상을 받았을 때, 그 두 단어의 조합이 무척 흥미로웠다. 최고급 럭셔리와 시시껄렁한 양아치….

에르메스 상은 양아치의 인생에 엄청난 빛과 그늘을 동시에 드리웠다. 그는 1990년대 PC방에서 컴퓨터 언어를 작업하며 지내던 ‘백수’였다. 원양어업을 하던 유복한 집안은 그가 미대를 나와 유학을 알아볼 때 폭삭 망했다.

세상사는 알 수 없다. PC방에서 감시와 전자정부에 대해 웹진 형태로 작업한 그의 미디어아트에 미술계는 환호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웹 콘텐츠는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PC방 아이디를 작가명으로 삼은 양아치는 2002년 첫 개인전부터 승승장구했다.

비둘기로 빙의한 여성으로 감시를 시각화해 에르메스 상을 받자 그의 작품을 ‘묻지 마’ 식으로 사들이겠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불안하고 불편했다. 상품으로 소비되는 느낌, 자신의 주장들에 대한 책임감. 우울증이 됐다.

양아치는 요즘 인왕산을 오른다. 우울을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이런 나약하고 난해한 인간에게 에르메스는 왜 상을 주었으며 또 이렇게 새 전시 기회를 준다는 말인가.

에르메스는 한국의 창의적 작가를 발굴, 후원하기 위해 2000년 이 상을 만들면서 영어로 ‘Missulsang(미술상)’이라고 지었다. 이른바 ‘멀티 로컬’ 전략이다. 서도호 박찬경 등이 이 상을 받아 세계적 지명도를 끌어올렸다. 중요한 건 에르메스가 이 상을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얻고 있다는 점이다. 양아치의 미디어아트는 ‘저렴한’ 뉘앙스의 작가명과 달리 진지하며 실험적이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혼란의 시대에 새로운 우주를 꿈꿔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에르메스와 양아치의 만남 덕분에, 사람 흉내에 급급했던 나 ‘지지’는 비로소 온전한 새가 된 것 같다. 나와 소통하기 위해 저리도 열중하는 양아치를 보면서 나도 조금 더 쫑긋 귀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미디어 아티스트#양아치#양아치 오브제#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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