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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의 핫 피플]‘이방카의 여자’ 디나 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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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의 핫 피플]‘이방카의 여자’ 디나 파월

하정민 기자 입력 2017-04-14 09:00수정 2017-04-1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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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교육문화담당 차관보를 지낸 디나 하비브 파월(44)을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차관급)으로 발탁했다. 이집트 태생으로 4살 때 미국에 온 그는 아랍계 여성으로 미 행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디나 파월


유창한 아랍어를 구사하는 파월은 밸러리 재럿 전 백악관 선임고문, 진 스펄링 전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오바마 정권의 실세들과도 돈독한 사이다. 이민자, 여성, 반대파에 유독 적대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정권의 부정적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요인이다.

그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와 처음 만났다. 여성의 사회진출 현안에 대해 조언하고 유명 여성 기업인을 소개해주며 단숨에 이방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두 번째 백악관 입성까지 이뤄냈다. CNN 등 미 언론이 ‘이방카의 여자’로 부르는 파월은 누구일까.



○ 이집트계 콥트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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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은 197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육군 대령, 어머니는 이슬람권 여성으로는 드물게 카이로 소재 아메리칸대를 졸업했다.

파월의 부모는 두 딸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그가 4살일 때 미 텍사스 주 댈러스로 이주한다. 이들이 콥트교도인 것도 이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콥트교는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기독교 종파로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인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핍박을 받아왔다. 댈러스를 이주지로 택한 것도 이 곳에 콥트교 이민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파월의 부친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간간히 버스 운전을 하는 등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쉽게 영어를 배운 두 딸에게 “집에서는 반드시 아랍어로 말하고 아랍 음식을 먹어라”고 강조했다. 이집트인의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파월은 “점심 때 다른 친구들은 늘 칠면조 치즈 샌드위치와 감자 칩을 먹었다. 그 평범한 미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늘 팔라펠(아랍식 크로켓)과 후무스(병아리 콩으로 만든 아랍식 스프레드)를 싸줬다. 그때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내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회고했다.
팔라펠(아랍식 튀김)에 둘러싸인 후무스(가운데 연노란 부분)

○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 입문

파월은 텍사스 오스틴주립대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당초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케이 베일리 허친슨 당시 텍사스 주 상원의원(공화당)의 인턴 제의를 받고 이를 접는다.

전형적 이민자였던 그의 부모는 이 결정에 반대했다.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파월은 “어렸을 때부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로스쿨을 포기하자 특히 어머니가 크게 낙심했다. ‘너는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다만 네가 변호사나 의사를 꿈꾸는 동안에만 말이야’라고 했을 정도다. 많은 이민자 자녀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친슨 상원의원을 거친 파월은 딕 아미 하원 원내총무의 보좌관이 된다. 공화당 실세 아미 밑에서 일한 경험은 그가 공화당 선거 전략을 관장하고 어마어마한 자금을 집행하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에서 일하는 데 발판이 된다.

RNC 시절 그는 부시의 절친이자 인재 스카우트를 담당하던 클레이 존슨 3세를 만난다. 부시의 예일대 동문인 존슨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일 때 그의 비서실장을 한 최측근. 존슨은 파월에게 부시의 대선 캠페인에 들어오라고 제의하고 부시와의 면담도 주선한다. 파월은 “부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압도당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부시의 핵심 참모로 부상

2003년 1월 파월은 클레이 존슨 3세의 후임으로 백악관 인사담당 보좌관이 된다. 만 29세의 젊은 여성이 장차관을 포함한 4000개 정부 요직 후보를 물색하고 추천하는 막강한 직책을 맡았다.
부시 정권 시절의 파월


파월은 부시 대통령의 심중을 파악해 그가 선호하는 인물을 잘 찾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대통령은 물론 그 일가족으로부터도 신임을 얻었다. 파월은 딕 체니 부통령,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정치고문 등과 함께 부시의 핵심 참모 즉 ‘이너서클’로 불렸다. 2004년 9월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미 행정부 인사체계를 살펴보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첫 번째로 만난 사람도 파월이었다.

파월은 2005년 3월 국무부 교육문화 차관보로 승진한다. 당시 국무부에는 여풍이 거셌다.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를 필두로 캐런 휴즈 대외홍보 차관, 파월 차관보 등 주요 인사가 모두 여성이었다.

휴즈 차관과 파월 차관보가 모두 워킹 맘인 점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파월은 워싱턴 유명 PR회사 퀸 길레스피에서 일하는 리차드 파월과 결혼해 두 딸을 뒀다.

그는 직속상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물론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으로부터 업무 능력에 관한 극찬을 받았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많아도 이를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문데 파월은 실행력(execution)이 정말 뛰어나다”고 말했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은 “파월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똑똑하다”고 평했다.


○ 골드만삭스의 책임자로 변신

부시 집권 2기의 마지막 해인 2007년 파월은 백악관을 나와 골드만삭스로 이직했다. 사회공헌 사업을 담당하는 골드만삭스 자선재단 책임자 자리였다. 그는 5억 달러(약 6000억 원)의 기금을 주무르며 세계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는 ‘1만 여성(1000 women)’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골드만삭스 자선재단 강연회에 로라 부시 전 미국 영부인을 초청해 환담하는 파월


파월은 국무부 시절 쌓은 네트워크를 200% 활용했다. 그는 세계 2위 부호 워런 버핏, 경영 구루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 등 유명인사를 섭외해 여성 창업가에게 자문을 하도록 했다. 6억 달러의 돈도 추가로 모았다.

그가 밸러리 재럿 백악관 고문, 진 스펄링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오바마 정권 실세와 친해진 것도 이 시기다. 세계 각국을 돌며 재단 사업을 하려면 미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2014년 파월이 주관한 행사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등장한 적도 있다.

파월은 2015년 3월 뉴욕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를 노리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기금 모금 마련 행사를 주관했다. 비록 부시 전 주지사는 공화당 후보가 되지 못했지만 그는 옛 주군의 동생에게 호의를 베풀며 의리를 지켰다.

파월은 2016년 이방카 트럼프와 재러드 쿠슈너 부부를 만났다. 아버지의 선거 캠페인을 관장하던 이방카 부부가 파월에게 여성 정책에 관한 자문을 한 것이 계기였다. 라이스 국무장관 등의 추천도 잇따랐다. 이방카의 신뢰를 얻은 그는 트럼프가 당선인이던 시절 정권 인수위에 합류했다.
백악관 정원에서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장 왼쪽), 골드만삭스 전 동료인 게리 콘 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이방카 트럼프와 같이 있는 파월.



○ 안보 분야의 핵심으로



트럼프의 보좌진들은 트럼프가 대선후보일 때부터 러시아에 관한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2016년 7월 선거본부장 폴 매너포트가 우크라이나의 친(親)러시아 정당으로부터 약 140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사임했다. 올해 2월에는 행정부 안보사령탑인 NSC 수장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또 사퇴했다.

플린이 발탁한 2인자 캐슬린 맥팔런드 부보좌관은 이번에 파월에게 자리를 내줬다. 폭스뉴스의 강경우파 전략분석가였던 맥팔런드는 플린 낙마 후 내내 입지를 위협받았다.

파월의 급부상 뒤에는 이방카 부부는 물론 플린의 후임자 허버트 맥매스터 NSC 보좌관의 추천도 있었다. 맥매스터는 파월에게 부보좌관을 맡아달라고 직접 요청했고 정식 부보좌관이 되기 전부터 NSC 장관급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파월은 이달 6일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마련된 ‘시리아 공습 상황실’에 유일한 여성 참모로 참석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자리에 맥팔런드는 없었다.
트럼프 정권이 시리아 공습을 결정하던 이달 6일 마러라고 리조트 내 상황실. 미 정부 주요 인사가 모두 모인 이 자리에서 파월(오른쪽에서 네 번째)은 유일한 여성 참모로 참석했다.


미 언론은 파월의 영향력이 단지 NSC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며 특히 중동 정책에 그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무부 시절 동료 캐런 휴즈 전 차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우리 둘은 보수적인 사우디에 방문해 잔뜩 긴장해 있었다. 사우디 국왕이 입을 열자 파월이 상냥하게 웃으며 아랍어로 대꾸했다. 나는 그때 국왕이 지었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젊고 아름다우며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여성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때 알았다.”

아랍계 여성 이민자인 그가 걸어온 길은 양성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알리고 아직도 미국이 기회의 땅임을 알리는 데 최적의 ‘선전 도구’다. 스스로 “나의 성공은 미국이 능력위주 사회(meritocracy)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는 파월. 그는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을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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