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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남극점에서 은퇴하는 날까지… 목숨 걸고 코리안루트 개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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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남극점에서 은퇴하는 날까지… 목숨 걸고 코리안루트 개척하겠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6-01-25 03:00수정 2016-01-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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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탐사루트 개척 나선, 이종익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종익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0년에 걸친 탐사를 통해 남극운석 분야에서 한국을 세계 5위권으로 올려놓았다. 이번 겨울도 40일 동안 남극을 다녀온 이 연구원은 “앞으로 10년 동안 육로로 남극 내륙에 진출하는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고 대한민국 제3 남극기지의 기틀을 놓는 데 남은 인생을 걸고 싶다”고 밝혔다. 인천=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딱 10년 전이다, 이종익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처음으로 남극 대륙에서 운석을 발견한 때가. 1992년 극지연구소에 들어온 이 연구원은 남극 킹조지 섬에 있는 세종기지를 방문할 때마다 안타까웠다. 본토, 남극 대륙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고무보트를 타고 나갔다가 세 번이나 보트가 뒤집어지는 사고까지 겪었지만 광활한 남극 대륙을 누비고 싶다는 갈증은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이제 대륙의 훨씬 안쪽을 향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보고기지에서 남극 내륙으로 진출하는 길, 즉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고 그 끝에 제3 남극기지를 짓겠다는 꿈이다. 》


극지연구소가 있는 인천 송도의 한 지하철역에서 만났을 때 이 연구원은 남극에 남아 있는 아내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극 화산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헬리콥터 타는 일정을 논의했는데, 옛날 생각하면 정말 좋아진 거예요. 남극에 처음 갔을 때는 기지에 있는 전체 직원이 하루에 딱 10분 통화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장보고기지에서 와이파이가 팡팡 터져요. 그래서 외국 연구원들에게 우리 기지의 인기가 정말 좋죠.”

○ 남극은 운석의 보고… 탐사중 크레바스에 빠져


이날 이 연구원은 남극 운석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2006년부터 ‘남극 운석 찾기’에 나섰다. 지난해 초 공개한 36kg짜리 운석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487개의 운석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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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이번 겨울에 찾은 운석 중에 화성 운석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며 “가능성은 90%”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아직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화성 운석은 1g당 2000달러에 달하는 귀한 운석이다. 하지만 며칠 뒤 ‘화성 운석이 아닌 것 같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다.

이번 겨울 운석 탐사는 아쉬움이 많았다. 날씨 때문이었다. 보통 남극을 가면 8번은 운석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는데, 이번에는 워낙 날씨가 좋지 않아 4번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운석 탐사는 숫자 면에서 최고 실적이다. 조사단은 장보고기지에서 남서쪽으로 300km 떨어진 엘리펀트 모레인이라는 지역을 조사했는데 무려 166개의 운석을 찾아냈다. 한 해 기준으로 신기록이다. 이 연구원은 “포기하지 않고 화성 운석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전했다.

남극은 운석의 보고다. 블루 아이스라는 파란 얼음이 그대로 드러난 청빙 지대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남극 내륙에 떨어진 운석은 빙하를 타고 돌아다닌다. 그래서 운석 탐사는 남극에서 가장 위험한 연구 중 하나다. 기지에서 멀리 나가야 하고, 지도에도 없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가장 위험한 건 얼음이 갈라져 생긴 깊은 크레바스다. 이 연구원도 몇 년 전 무심코 크레바스 밭에 들어갔다가 2, 3시간 만에 빠져나온 적이 있다.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운석 연구를 하는 이유는 뭘까.

“남극 대륙을 누비며 남들이 안 하는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게 첫 번째 이유고, 결정적 계기는 후배인 최변각 서울대 교수 때문이었어요. 이 친구가 미국에서 운석을 배우고 돌아온 뒤 자꾸 연구를 같이하자는 거예요. 지질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땄겠다, 역마살까지 있겠다, 내가 아니면 누가 같이하겠나 싶었죠. 어느 날 ‘그래, 하자, 대신 나는 모든 걸 다 걸 거다, 너도 다 걸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때부터였습니다.”

○ 코리안루트와 제3의 남극기지 개척

이 대목에서 이 연구원은 “올해 말에 10번째 운석 탐사를 떠나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 이유와 이후의 계획도 궁금해졌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10년 동안 남극 내륙으로 향하는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개의 남극 기지를 갖고 있다. 1988년 완공한 세종기지, 2014년에 문을 연 장보고기지다. 장보고기지는 남극 대륙에서 빅토리아랜드라는 지역의 해안가에 있다.

이 연구원은 “장보고기지를 지으면서 우리나라는 남극 10대 강국 안에 들어갔다. 내륙에 또 다른 기지를 지으면 우리나라는 단숨에 남극 5강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제3 남극기지이고, 장보고기지에서 제3 남극기지로 가는 길이 바로 코리안루트다.

“제3기지와 코리안루트가 완성되면 남극에서 완전히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어요. 남극 얼음 밑에는 빙저호라 불리는 호수가 400여 개나 있어요. 호수 물에 사는 생명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진화와 우주생물학에 큰 자극을 줄 겁니다. 또 3000m 깊이로 빙하 코어를 시추해 100만 년 전의 고(古)기후를 연구할 수도 있죠.”

장보고기지는 남위 74도 지점의 해안에 있다. 아라온호 같은 쇄빙선에서 물자를 보급받기 위한 곳이다. 여기서 내륙으로 1200km 이상 더 올라가면 3000m 두께의 얼음으로 덮인 고원이 있다. 이곳은 그가 제3기지를 짓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이곳까지 가는 코리안루트 중 가장 개척하기 어려운 곳은 장보고기지에서 100km쯤 가는 길에 있다. 기지 주변에 큰 빙하가 3개나 흐르는 데다 기지를 둘러싼 언덕의 경사가 꽤 가파르기 때문이다.

“운석을 찾을 때 타고 다닌 스키두(썰매)로야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려면 규모가 달라져요. 설상차 4대에 이동숙소(카라반) 4개를 연결하고, 기름탱크 4대도 함께 끌고 가야 하거든요. 말 그대로 이동기지죠. 올해는 스키두만 타고 기지에서 200km 거리까지 다녀왔는데 정말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남극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오지다. 도처가 위험지대다. 눈보라가 아주 멀리서 부는 것 같아 안심했다가는 어느새 주위가 보이지 않고 지표면이 눈발에 덮인다. 이 연구원은 “각 나라의 남극기지에는 현지에서 숨을 거둔 대원들의 명복을 기리는 상징물이 있다. 남극 연구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이뤄진 것”이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나라도 2003년 고(故) 전재규 대원이 남극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바 있다.

이 연구원의 뇌리에 끔찍한 사고에 관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 다른 나라에서 헬기 파일럿이 작업 중 숨지는 사고가 났어요. 헬기 2대가 멀리 떨어진 기름 탱크 주변에 착륙해서 기름을 넣는 작업을 했는데, 그만 파일럿 한 명이 크레바스에 빠진 거예요. 원래 남극에는 꼭 안전요원이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이런 경우까지 적용되지는 않았어요. 이 때문에 구조가 늦어졌고, 기지로 이송까지는 했지만 다음 날 숨을 거뒀어요. 루트 개척에는 과학자도 중요하지만 베테랑 안전요원들이 반드시 필요해요. 다행히 운석을 찾으면서 인력을 많이 키울 수 있었어요.”

○ 1000분의 1 확률에도 도전은 멈추지 않아

이처럼 극한상황에 맞닥뜨리다 보니 남극기지에서 연구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지금까지 20번 이상 남극에 들어갔지만 목표량 100을 하겠다고 들어가서 그대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때로는 ‘생존’만 바라며 돌아와야 할 때도 생긴다.

이 연구원은 20년이 넘는 남극 생활을 하며 “애매할 때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책임자가 “오늘은 활동 중지(day off)”라고 선언해주면 아예 편한데 “상황이 애매하니 나보고 결정하라”고 하면 고민이 커진다. 연구가 자꾸 밀리다보면 조급한 마음에 무리해서 헬기를 타고 나갈 때도 있는데 대개는 중간에 돌아오게 된다. “있을 걸, 말을 들을 걸 하고 후회했던 적이 많죠. 연구는 못했는데 헬리콥터 이용시간과 소중한 기름을 다 썼거든요. 남극에선 참고 기다려야 해요. 조급해하면 사고 납니다.”

이 연구원은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면서 함께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또 생겼다. 바로 우주먼지다. 올해도 조사단에 일본 도호쿠대의 나카무라 도모키 교수가 동행했는데 우주물질 전문가다. 이 연구원과 나카무라 교수는 운석을 찾는 틈틈이 깨끗한 눈을 잔뜩 떠왔다. 남극에 떨어진 우주먼지를 찾는 작업이다. 이 연구원은 “300kg의 눈을 6개월 동안 천천히 녹여 필터로 거를 건데 1000개의 먼지 중 하나꼴로 우주먼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올해 11월이 되면 10년 전 남극으로 함께 떠났던 첫 동료들과 10번째 운석 탐사를 떠날 계획이다. 영원한 동료 최변각 교수와 베테랑 안전요원인 유한규 코오롱 이사는 이미 참가를 확정 지었다.

2017년 1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설상차를 타고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겠다는 실행 목표도 세워 놓았다. 코리안루트는 그때부터 5∼10년은 걸릴 것이다. 올해 53세인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상 마지막 프로젝트다. 마침 지난해 말 1만2000t급 제2쇄빙선 건조가 확정돼 그의 계획에 힘을 보탰다.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려면 쇄빙선이 두 척 필요하다.

“운석 연구는 이제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도 됐죠. 충분히 잘할 겁니다. 처음에 운석을 찾겠다고 같이 다닌 동료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 남극점에서 은퇴하자’고요. 그때는 그냥 웃었는데 그 말이 실제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인천=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세종기지#이종익#극지연구소#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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