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회장 “밑져도 국익 위해 맡아야 하는 사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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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한국 기업史 명장면 10]<7>한진, 1969년 대한항공공사 인수

1969년 3월 6일 김포공항에서 열린 한진그룹의 대한항공공사 인수식. 당시 대한항공공사가 보유한 비행기는 거의 수명이 다하거나 임차한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가 전부였다. 한진그룹 제공
1969년 3월 6일 김포공항에서 열린 한진그룹의 대한항공공사 인수식. 당시 대한항공공사가 보유한 비행기는 거의 수명이 다하거나 임차한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가 전부였다. 한진그룹 제공
1968년 여름,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청와대의 부름을 받았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적자투성이였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무렵 조 회장은 정부 당국자의 같은 부탁을 세 차례에 걸쳐 거절한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기업인으로서 당연한 처사였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동아시아와 동남아 지역 11개 항공사 중 11위를 하는 항공사였다. 가지고 있던 항공기는 8대. 하지만 대부분 좌석 수 30∼40석 규모의 프로펠러기로, 좌석을 다 합해도 요즘 점보기 한 대에 해당하는 400석도 채 안 되는 규모였다.

더 큰 문제는 재정 상황. 누적 적자는 차치하고 금융 채무만 당시 27억여 원인 회사였다. 실제 정부는 항공공사를 두 차례 공매에 부쳤지만 당시 기업가치가 자본금의 절반 수준으로 평가돼 응찰자가 아무도 없었다. 조 회장의 측근들은 정부의 인수 요구에 대해 “한진이 베트남에서 힘들게 번 돈을 밑 빠진 독에 부으라는 것”이라며 거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회장도 이에 수긍하며 다시 거절할 생각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앞서 조 회장은 1961년 ‘한국항공’을 세웠다가 5·16 후 혁명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사업을 접어야 했던 쓰라린 경험도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주위 사람들을 물리친 뒤 조 회장과 독대했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 꼭 들어 달라며 말을 이었다. 박 대통령은 “재임 중에 별도의 전용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번 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며 “월남에서 휴가를 나오는 우리 장병들이 외국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장병들 사기도 문제려니와 귀중한 외화가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회장이 계속 묵묵부답으로 있자 박 대통령은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에는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며 재차 요청했다. 대통령이 국가의 체면까지 거론하며 요청하자 조 회장은 결국 항공공사 인수를 약속한다. 조 회장은 이 자리에서 “수임 사항으로 알고 맡겠다”고 했다. 경제성보다는 국익을 위한 임무로 생각한 것이다.

회사로 돌아와 반발하는 중역들에게 조 회장은 “밑지면서도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설득했다. 또 당시 해운을 먼저 육성하려던 계획을 바꿔 항공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1969년 3월 6일,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공사 인수식이 열렸다.

극동지역의 협소한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약점으로 모두가 한국의 민항 사업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조 회장은 과감하게 프로펠러기가 아닌 최신 제트기를 서둘러 도입하며 이름에서 ‘공사’를 뗀 대한항공의 체질을 바꿔 나갔다. 올해 창립 46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현재 보유 항공기 154대, 임직원 수 2만870여 명으로 수송능력 기준 전 세계 14위 대형 항공사로 성장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조중훈#국익사업#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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