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같은 질병, 다른 치료비’ 4개 병원 차이가 무려 255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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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병인데도 병원비가 달라 소비자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때문에 표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대형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같은 질병인데도 병원비가 달라 소비자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때문에 표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대형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당연한 말이지만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입장이다. 환자의 입장이란 것도 두말할 것 없이 병을 정확하게 조기 진단받고 적시에 치료를 받으며 치료 결과가 만족스러워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이 의료비다.

의료행위는 고도의 창의적 분야이기 때문에 표준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의료 역시 기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표준화가 가능하다. 의료진의 지식(지침준수)과 손재주(기술)가 표준화돼 있으면 환자들은 어느 병원, 어느 의사를 찾아도 평균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의료비 적정 산출의 근거가 마련된다.

오늘 칼럼에서는 진료지침 표준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편의상 2001년 실제 데이터를 근거로 A라는 동일한 질병을 앓고 있던 환자 4명이 각각 다른 4개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얼마의 비용으로 치료받았는지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A는 비교적 흔한 질병인데 대형 병원들은 비슷한 환자들의 데이터와 많은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가 가능하다고 본다.

A라는 병은 진단이 되면 거의 모두 수술이 필요하다. 소규모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려워 환자는 큰 병원을 추천받고 처음부터 검사와 진단을 다시 하게 되는 때가 많다. 아래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진단부터 병원마다 다양하고 중복된 검사가 진행되는 사례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떻든 실제로 필자가 4개 의료기관 자료를 검토해 보니 유의미한 차이가 나왔다.

○ 검사 항목-시행 횟수 천차만별

①우선 환자들이 낸 1인당 총진료비가 각각 달랐다. 4개 병원 각각 554만 원, 598만 원, 675만 원, 809만 원으로 가장 많게는 무려 255만 원이나 차이가 났다. ②총진료비를 구성하는 항목을 살펴보았더니 진찰료나 입원료는 거의 비슷했지만 검사 항목이 병원마다 달랐다. 4개 병원의 검사항목을 모두 합쳤더니 총 70여 가지가 나왔다. 이 중 수술 전에 시행한 효소 검사, 당 검사, 면역조직화학 검사의 시행 횟수를 비교해 보니 가장 적게 시행하는 병원과 가장 많이 시행하는 병원 사이에 각각 2.1배, 4.5배, 5.3배의 차이가 발생했다. 일부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에는 정말 환자에게 필요한 검사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고 추정되는 항목들도 있었다.

한편 4개 병원의 평균 수술시간을 계산해 보니 가장 짧은 시간을 들인 병원과 가장 긴 시간을 들인 병원 간에 1.8배의 시간 차를 보였고 수술에 쓰이는 봉합실이나 봉합기기의 사용 빈도는 3배, 평균 재료비는 1.6배 차이가 있었다. 환자가 입원해 있던 기간도 가장 짧았던 병원과 긴 병원 사이에 5.8일의 차이가 났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차이가 병원 간뿐만 아니라 한 병원 안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같은 해 데이터를 기준으로 A라는 동일한 질병을 수술한 의사 5명을 비교해 보니 평균 수술시간이 짧게는 92분에서 길게는 163분으로 다양했다. 환자들의 입원기간도 의사에 따라 8일에서 16일 정도로 벌어졌다. 환자들이 지불한 진료비도 의사에 따라 662만 원에서 740만 원으로 달랐다.

○ 질환별 진료패턴 표준화해야

같은 질병인데도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 진료지침이 명문화돼 있지도, 통일돼 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기술이 획일적인 것도 문제이지만 동일한 질환에 대해 너무 편차가 크다면 현재 진단 및 치료 패턴을 재고할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병원마다, 의사마다 다른 수술 전후 진단을 위한 검사 항목과 시행 횟수가 어느 정도 표준화가 이뤄지면 평균 수치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에는 철학의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의사는 상대적으로 고가의 복강경 수술에 적극적이지 않고 고가의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자제하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이런 현상에 대한 분석과 고찰, 대안을 제시하는 현장 중심의 양식 있는 의료인 주체 그룹이 없다는 사실이다.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진단과 치료 방법의 끊임없는 도입과 실행이 의료 세계화의 원동력임을 확신한다면 한국 의료의 표준화와 이의 준수 및 실행이 해결책이란 사실에 더이상 의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

자, 이제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①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한 대한의학회 중심의 임상 진료지침 구축작업을 학회와 국가적 차원에서 수면 위로 올리고 각종 지원책을 준비하면 좋겠다. ②대형병원을 포함한 병원 간 최상의 진료 결과를 개방하고 개인별, 질환별 진료 패턴 차를 분석해 표준화 및 의료비 적정화 작업을 시작했으면 한다. ③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도 환골탈태한다는 각오로 최고 수준과 적정 수준을 아우르는 진료 패턴을 확립하는 데 함께했으면 좋겠다. 표준 임상 진료지침이 완성되면 한국 의료는 명실상부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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