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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해군 소위 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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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해군 소위 최민정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입력 2014-12-25 03:00수정 2014-12-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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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올 1월 홍콩에서도 한 재벌 딸이 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물론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전 세계에 일으킨 화제와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한자 성은 같다).

부동산 재벌 세실 차오(趙世曾)는 딸의 남편을 구한다며 현상금 10억 홍콩달러(약 1420억 원)를 내걸었다. 2년 전 아버지는 5억 홍콩달러를 내걸고 사윗감을 공모했었다. 그땐 무려 2만여 명의 사나이가 몰려들었다. 사윗감 찾기에 실패한 아버지가 현상금을 두 배로 올렸다. 그러자 딸 지지 차오(趙式芝)는 바로 신문에 공개편지를 냈다. 아버지 회사의 전무이자 상속인인 딸은 편지에서 9년간 사귄 여자 연인은 정상 인간이라며 자신의 동성 결혼을 옹호했다. 동성애자인 자신의 남자를 찾는 아버지의 행위가 얼마나 무모한가를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마침내 아버지는 현상금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낙심한 그는 “딸은 이제 33세이다. 인생은 바뀐다. 언젠가는 딸이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면서 딸의 여자 연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끝내 거부했다. 이 홍콩 재벌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결코 제대로 되지 않는 자식 농사의 예를 조양호 회장에 앞서 온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준 셈이다.

동성애를 하는 재벌의 딸. 그 하나만으로도 저잣거리에서 얘기가 만발할 것이다. 천문학적 액수의 결혼 현상금을 거는 아버지의 황당함. 신문의 공개편지로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보스이기도 한 아버지를 겸연쩍게 만드는 딸의 당돌함. 웬만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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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 속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재벌가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언론재벌 윌리엄 허스트의 손녀인 페티 허스트는 1974년 좌익 게릴라 단체에 납치되었다. 그 뒤 4억 달러의 몸값을 요구하던 게릴라들과 함께 소총을 든 채 은행을 터는 모습의 사진이 공개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영화 속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법한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났지 않은가. 항공사의 후계자 딸이 땅콩 때문에 비위가 상해 비행기를 되돌리게 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지 차오나 페티 허스트, 조현아 세 여자 모두 돈 때문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가진 엄청난 돈이 그들을 세상의 도마에 오르게 했으며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앞의 두 사람은 혈육이 가진 재산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페티의 경우 할아버지 재산 때문에 납치되고, 은행 강도까지 되는 기구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다르다. 그는 아버지의 돈을 믿고 자신의 인성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세상의 혹독한 비판과 법의 처벌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이들의 경우에서 보듯 재벌 집안의 자식들이 돈의 유혹, 돈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직접이든 간접이든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최민정 해군 소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소위로 임관돼 현재 장교 실무 교육을 받고 있는 그는 널리 알려졌듯이 재벌(SK)의 둘째 딸이며 전직 대통령의 외손녀이다. 재벌의 딸은 말할 것도 없이 재벌의 아들 가운데서도 장교로 군대를 마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금 최 소위는 여러 종류의 함정을 거치며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군함을 타 본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 거친 겨울 바다가 얼마나 혹독한 멀미를 일으키는지. 좁디좁은 함정 내 생활이 얼마나 답답하게 만드는지. 그는 3년 3개월의 복무 기간에 수없는 시련과 고통을 군함 속에서 겪어야 한다.

그는 국방의 의무가 없는, 여자이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호사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최 소위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길고도 험난한 길을 선택했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에게도 집안의 재산으로부터 오는 유혹이 없었겠는가. 이제 스물세 살의 처녀, 그것도 재벌의 딸이라면 쇼를 한다 하더라도 장교 입대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해군 관계자들도 훈련 초기에는 그의 진정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재벌이 주는 선입견이 그만큼 강했다는 것.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여느 후보생들과 전혀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최 소위가 자신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물론이고 군내의 별다른 시선조차 부담으로 느끼며 결코 나서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조현아 사태를 보면서 최 소위의 입대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고, 더 널리 알려져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본보기란 말을 쓰고 싶다. 아버지의 재산에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힘들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는 최 소위의 당당함은 재벌의 자식들뿐 아니라 군대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가지거나 또는 세상을 쉽게만 살려는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은 어쩌면 교도소에서 남은 겨울을 보낼 것이다. 최 소위는 바다 위 군함에서 남은 겨울을 보낼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이 올해 가장 부끄러운 여성이라면 최 소위는 올해 가장 자랑스러운 여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끝>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해군 소위#재벌#최민정#조현아#세실 차오#지지 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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