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대외정책 양대 구상 현주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어디서 길을 잃었을까… 朴정부 ‘동평구 실종사건’
잊혀진 구상?… 부활을 꿈꾼다

박근혜 대통령의 양대 대외(對外) 정책 구상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한신프)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동평구)이다.

압축해 설명한다면 ‘한신프’는 남북 간에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이어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동평구는 그 범위를 넓혀 한국이 속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화해와 협력의 질서를 정착하기 위한 구상이다. 이 지역에서는 경제적 상호 의존 증가와 협력이 확대되고 있지만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갈등과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겠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한 것이 동평구다.

한신프는 통일부가 주도하는 남북관계 구상이고, 동평구는 외교부가 이니셔티브를 쥔 동북아 신질서 구축 수립 프로젝트라고 말하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 박 대통령은 이 두 개의 구상을 양 날개 삼아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하려 했지만 북한의 비협조와 동북아 안보 갈등의 격화 속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했다.

#1 ‘동평구’ 살아있나

하지만 올해 들어 한신프와 동평구에는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한신프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평구는 여전히 지지부진해 보이는 것.

한신프가 탄력을 받은 결정적인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일명 드레스덴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연초 ‘통일 대박’ 발언 이후 박 대통령은 한신프 가동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고 7월 15일에는 통일준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7일에는 청와대에서 통준위 첫 회의를 열고 통일을 위한 구체적 청사진 마련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통일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 마련과 주변국 협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통일에 대해 국민은 물론이고 주변국도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는 만큼 통일은 모두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라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게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동평구는 잘 안 보인다. 일각에서는 ‘동평구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동평구는 결국 ‘잊혀진 구상’이 되고 말 운명일까? 그렇다면 동평구가 박근혜 정부의 ‘옥동자’로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조심스러운 전망이지만 동평구가 박 대통령의 하반기 외교안보 구상의 신데렐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주철기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있다. 윤 장관과 주 수석은 최근 동평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 해외 동평구 ‘로드쇼’의 성과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은 7월 29일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동평구에 대해 설명회를 열었다. 이번 설명회는 3월에 이은 두 번째 ‘아웃 리치’로 동평구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차원에서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했다고 한다.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아태전략연구원에서 열린 이번 설명회는 한펑(韓峰) 사회과학원 아태연구원 부원장, 왕판(王帆) 외교학원 부원장, 푸멍쯔(傅夢孜)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부원장 등 중국 내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 관련 전문가 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5시간 동안 진행됐다.

조 차관은 그동안 동평구 관련 국가들이 보인 관심을 반영해 이 구상이 한국 주도의 특정 기구 설립을 염두에 둔 정치적 어젠다가 아니고, 북한을 배제한 ‘6 빼기 1’의 구상이 아니며, 기존의 지역협력 메커니즘을 보완 발전시키려는 것임을 집중 설명했다.

이에 앞서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는 미국 워싱턴을 찾아 미국의 협력을 구했다. 미국에서는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프랭크 자누지 국제사면위원회 부국장, 패트릭 크로닌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자문관,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이 차관보는 원자력 안전, 에너지 안보, 사이버 스페이스, 환경, 보건 등 협력이 용이한 비전통 안보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협력을 추진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

워크숍이 끝난 뒤 한미 양측은 한미 공조 및 지역적 다자협력이 긴요한 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 확대 가능성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또한 동평구가 한미동맹 및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동평구를 외국에서 공식화한 것은 2013년 5월 미국 국빈방문 기간이다. 지난해 5월 8일 이뤄진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나아갈 두 번째 여정(旅程)은 동북아 지역에 평화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길”이라고 규정했다. 박 대통령은 또 “동평구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발전에 기여할 것이지만 이러한 구상은 한미동맹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다.

#3 2박 3일간의 용평 끝장토론


동평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노력은 국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차를 맞아 본격적인 추진의 움직임도 보인다.

7월 17일부터 2박 3일간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구체화와 국제협력’을 주제로 한 회의가 열렸다.

세종연구소와 한국수출입은행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실질적인 동평구 홍보대사인 세종연구소의 진창수 일본연구센터장과 이상현 안보전략연구실장, 연세대 한석희 국제학대학원 교수와 김용순 동서문제연구원 교수, 그리고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이 주도한 반관반민(1.5트랙)의 끝장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정부에서는 신범철 외교부 정책기획관, 이덕행 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이 직접 나서 동평구 실행 계획을 설명했고 홍보 구상을 내놨다. 외교부 국가안보문제담당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민 연세대 교수, 유현석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 등도 참여해 의견을 나눴다.

이번 2박 3일간의 난상토론에서는 동평구와 관련한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렸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동평구 추진에 대한 절박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동평구가 반드시 추진돼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성한 교수는 “정치적 수사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내용이 있는 정책으로 발전되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부 정책기획관을 지낸 이상현 실장도 “지난해 미국 중국 일본에서 정책설명회를 연 뒤 정부 차원의 이행 계획이 나오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며 “추가적인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 정부가 끝난 뒤 폐기될 우려도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정민 교수는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동평구를 ‘프로세스’라고만 설명하면 홍보가 어려워지니 이제는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이정표’를 세워두고 구체적 목표를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박
근혜 정부는 2013년 5월 8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구체화했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지역에서 
경제·문화 협력은 확대되고 있지만 안보·군사 분야의 갈등은 심화하고 있는 ‘아시아 패러독스’에 대한 해법 마련을 위해서도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추진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동아일보DB
박 근혜 정부는 2013년 5월 8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구체화했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지역에서 경제·문화 협력은 확대되고 있지만 안보·군사 분야의 갈등은 심화하고 있는 ‘아시아 패러독스’에 대한 해법 마련을 위해서도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추진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동아일보DB
2박 3일간의 끝장 토론 끝에 참가자들은 의미 있는 제안서를 만들어냈다. 제목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성공을 위한 액션 플랜’.

이 제안서는 동평구의 성공을 위해 동평구의 현실성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안보와 비안보 문제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른바 선이후난(先易後難)의 정신에 따라 환경, 기후변화 등에 집중하자고 했던 애초 구상에서 탈피해 군비경쟁이나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동평구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박 대통령이 최초 동평구를 제안했던 시점에 비해 동북아 안보환경이 더욱 악화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반영된 셈.

또한 변화한 여건과 절박감의 공유를 위해 동평구의 조기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제안서에 담았다. 일단 제도화가 이뤄지면 자체적 추동력이 형성된다는 점을 고려해 동평구 제도화를 위한 평화기금 마련이 우선 돼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구체적 액션 플랜으로는 동북아 안보신뢰구축 대화(CSCN·Conference on Security and Confidence-Building in Northeast Asia) 설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CSCN은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을 통해 군사적 긴장 해소와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다자안보 대화체로 직접 관련 당사국 외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관련 지역기구의 옵서버 참여도 추진하기로 했다.

#5 최대 관건은 박심(朴心)?

제안서는 “현 시점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의 정치적인 ‘의지’와 ‘재원’”이라고 명시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정치적 자산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한다는 뜻을 행간에 담았다. 결국 문제는 ‘박심’(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이라는 말이다.

구체적인 시간표도 제시했다. 동북아 지역에서 열리는 다자외교 무대에서 유관국의 외교장관회의를 추진한 뒤 성과가 있을 경우 11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계기로 정상회의를 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화 의지 표명과 관련해서는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동북아 안보신뢰구축 대화’ 설립과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사무국 설치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평화기금 마련을 제안하는 것도 고려토록 요청했다.

‘돈’을 내라는 제안도 있었다. 평화기금에 대한 여러 나라의 참여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한국이 제도화에 솔선수범한다는 차원에서 종잣돈 5000만 달러(약 515억3500만 원) 투자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고다.

#6 동평구, 날아오르나

동평구가 성공하려면 우리의 의지 못지않게 주변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까지 기류는 복잡 미묘하다. 미국은 동평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듯하지만 여전히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강하고, 일본도 원칙적으론 공감한다면서도 한일관계 개선이 먼저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나마 중국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지만 중국이 생각하는 지역안보 구상 및 중미 간 ‘신형대국관계’와 연계하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진창수 센터장 등 동북아평화협력연구팀은 6일 청와대에서 주철기 외교안보수석과 면담을 했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청와대는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한다. 8·15 경축사에서도 동평구를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평구가 화려하게 비상(飛上)할 수 있을지 여부도 중대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 동북아평화협력구상 ::

‘신뢰외교(trustpolitik)’라는 명제하에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한 구상. 열린 지역협력을 지향하며 연성안보문제를 중심으로 한 기능적 협력을 통해 역내 구성원들 간에 존재하는 불신과 의혹의 벽을 넘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고 협력의 범위를 점차 확대해 동북아 지역 내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정, 번영의 틀과 기초를 만드는 것이 목표.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동평구#동북아평화협력구상#대외정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