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43>한 해를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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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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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한 해를 보내면서 즐거운 마음이 드는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 이룬 것은 없고 나잇살만 먹어가니 그러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덕무(李德懋)는 제야(除夜)의 밤을 반성의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21세 때인 1761년 ‘신사년을 전송하는 글(餞辛巳序)’을 지어 “묻노니 오늘밤은 어떠한 밤인가. 어린아이들의 기쁨은 크겠지만, 사실 해(年)를 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해를 줄이는 것이니 늙어가는 회포가 적지 않다. 마치 천 리 먼 곳에 벗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슬프다. 푸른 촛불의 그림자가 바야흐로 길기만 하구나”라고 탄식하였습니다. 또 1764년 지은 ‘갑신제석기(甲申除夕記)’에서는 그해 9월 9일부터 섣달그믐까지 100여 일 동안에 공부한 것을 돌아보면서 그 공과를 기록하고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안히 있으면서도 가르침이 없으면 바로 짐승에 가깝다”, “하루를 독서하지 아니하면 털구멍이 모두 막힌다”는 옛말을 든 다음, 성실하게 공부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한 해를 보내면서’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섣달그믐이 바쁘고 후회스러운 법입니다. 그래도 섣달그믐에 후회했던 마음을 신년에 그대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섣달그믐을 보내는 선비의 마음입니다. 이덕무의 벗 박지원(朴趾源)은 설날 아침 거울을 보고 “두어 올 검은 수염 갑자기 돋았지만, 육척의 신장은 조금도 자라지 않았네. 거울 속 얼굴은 해를 따라 달라지건만, 자라지 못한 마음은 지난해나 그대로일세(忽然添得數莖鬚 全不加長六尺軀 鏡裡容顔隨歲異 穉心猶自去年吾)”라고 하였습니다. 외모는 세월을 따라 늙어 가는데도 마음이 그에 맞게 성숙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 거울을 보고 무슨 생각들을 하실는지요?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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