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50>퇴고(推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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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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推: 밀 퇴 敲: 두드릴 고

시문을 지을 때 글자나 구절을 정성껏 다듬고 고치는 것을 가리키며 ‘추고(推敲)’라고도 한다. 이 말의 유래는 당시기사(唐詩紀事) ‘가도(賈島)’ 편에 나온다. 당나라 때 시인 가도(賈島)가 어느 날 노새를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시상이 떠올라 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인다(題李凝幽居)’라는 오언율시였는데 그중 앞의 네 구를 소개하면 이렇다. “한가로이 사니 이웃도 드문데,/풀숲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들어간다./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자는데,/중이 달 아래에서 문을 두드린다.(閒居隣竝少, 草徑入荒園.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가도의 명편인 이 작품은 친구 이응을 만나러 갔다가 만나지 못한 감정을 노래한 것이다. 작품의 명구로 꼽히는 4구에서 가도는 ‘두드린다’는 의미의 ‘고(敲)’자가 좋을지 아니면 ‘민다’는 의미의 ‘퇴(推)’자가 좋을지 고민한다. 그러다가 당시 경조윤(京兆尹·수도의 장관)이었던 한유의 행차길을 침범하게 되어 한유에게로 끌려가게 됐다. 한유는 당시 최고의 문장가이면서 유학자로 명성이 높았다. 그를 만난 가도는 당황했지만 자신이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상세히 말했다. 그러자 한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민다(推)고 하는 것보다는 두드린다(敲)고 하는 게 나을 듯하다고 했다. 가도는 한유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구를 고쳤다. 두 사람은 그러고 나서 함께 말을 타고 가며 시에 관해 논했다. 그 뒤로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

초당(初唐)의 왕발(王勃)도 ‘등왕각서(등王閣序)’를 지어 문명(文名)을 날렸다. 그도 며칠 동안 사색에 잠겼다가 일필휘지하는 식으로 글을 써서 세인들은 그가 마치 배 속에 원고를 담고 있다가 쓰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게 복고(腹稿) 또는 묵고(默稿)라는 말이다. 이백을 두고 ‘술 한 말에 시 백 편(一斗詩百篇)’을 썼다고 하지장(賀知章)도 찬탄했었다. 작가가 일필휘지로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퇴고 과정 없는 작품은 나오지 않는 법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고전#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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