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이 책을 펼치는 자, 사랑을 아는 단테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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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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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단테/A N 윌슨 지음·정혜영 옮김/551쪽·2만8000원·이순

단테는 사랑의 혁명가다. 하나님의 전유물, 신적이었던 사랑을 인간에게 투사시킨 인물. 그래서 단테의 ‘신곡’은 중세를 떠나보내는 ‘장송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순 제공
단테는 사랑의 혁명가다. 하나님의 전유물, 신적이었던 사랑을 인간에게 투사시킨 인물. 그래서 단테의 ‘신곡’은 중세를 떠나보내는 ‘장송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순 제공
단테는 지옥으로 갔다. 그가 살고 있던 세상이 지옥 같았기 때문에 잠깐 악몽을 꾼 것일까? 그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에 새겨진 글을 읽게 되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지옥편 3곡, 9행)

단테의 책은 동시대 피렌체 사람들에게도 난해한 책이었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정치범이었다. ‘신곡’은 난해한 책일 뿐 아니라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이기도 했다. 외면당하던 단테와 ‘신곡’을 되살린 사람은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1313∼1375)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인곡(人曲)이라 불렀고, 단테의 책을 신곡(神曲·Divine Comedy)으로 불렀다. 우리는 보카치오의 소개를 통해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남남이 된다. 단테는 피렌체의 명문가 규수인 젬마 도나티와 결혼하게 되고, 베아트리체 역시 은행가였던 바르디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상실한 첫사랑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단테는 ‘신곡’의 처음 시작부터 지옥으로 내려간다. 베아트리체가 없는 삶, 가슴 뛰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우리는 이미 지옥의 문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단테는 자신의 시대를 절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역사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단테의 시대에 피렌체 금융업이 자본주의 초기 양식으로 발전했고 노동생산성의 파격적인 증가로 인해 유럽 문명은 중세 말기의 중흥을 맞게 된다. 그러나 피렌체의 최고시인이자 정치가였던 단테에게는 가슴 아픈 절망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단테는 정치적 발언에 거침이 없었고, 불의에 당당하게 대응하던 행동하는 삶을 살았다.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교황청을 향해 독설을 품는 단테를 유배형에 처한다. 예나 지금이나 입바른 소릴 해대면 이런 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신곡’은 로마의 건국신화를 쓴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고, 천국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흥미롭게도 단테는 1000쪽이나 되는 ‘신곡’에서 단 한 번도 아내 젬마를 거명하지 않았다. 정치범으로 객지를 떠돌아다니던 남편이 다른 여자 이름을 줄기차게 읊어대는 것을 보았다면, 아내는 화병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진 단테’를 쓴 저자는 이러한 단테의 독특한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숙고하는 삶(vita contemplativa)’과 ‘행동하는 삶(vita activa)’의 조화를 추구하던 단테에게 사랑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저자는 ‘신곡’을 단테가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기 위한 알레고리화된 자서전이라고 해석한다. 알레고리란 말이 어려우면, 상징이나 비유로 보면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진 단테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며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오가는 자기 고백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단테는 사랑의 혁명가였다. ‘연옥’ 편 24곡에서는 “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인”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단테가 일으킨 사랑의 혁명이다. 중세시대를 지배했던 신학은 사랑을 하나님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사랑은 신적인 것이었다. 인간은 욕망할 뿐이고, 어느 과학자의 표현대로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한 성욕이 사랑의 유일한 발현일 뿐이다. 그런데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사랑의 지성을 가진’, 다시 말하자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인간의 새로운 모습을 투사시킨 것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사랑의 지성을 가진 인간을 발견했을 때, 중세의 암흑이 물러나기 시작했고, 창조와 아름다움의 시대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단테의 ‘신곡’을 중세의 장송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랑의 지성이 메말라버린 한국 땅에, 권력을 향한 질주만이 횡행하는 이 시대를 향해, 단테의 영혼이 한 권의 책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을 펼치는 자, ‘사랑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사랑에 빠진 단테가 되리라. 한형곤 선생께서 완역한 ‘신곡’(서해문집)과 함께 비교하면서 읽으면 깊어가는 가을이 더욱 멋지리라.

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전문가가 본 이 책#단테#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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