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특허소송에 발묶인 IT 특허없는 패션서 교훈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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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옷 잘 입는 친구 한두 명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은 잘생겼고 키도 크지만 무엇보다 옷을 고르는 센스가 뛰어납니다. 동대문시장에서 산 싸구려 정장을 입어도 ‘아르마니’ 정장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이 친구의 비밀은 알고 보니 모방이었습니다.

패션에는 특허가 없습니다. 아르마니와 똑같이 생긴 정장을 만든다 해도 이는 지적재산권 침해가 아닙니다. 아르마니 상표만 쓸 수 없을 뿐이지, 똑같은 옷을 만드는 건 자유입니다. 이 친구는 아르마니를 닮았지만 값은 훨씬 싼 옷을 잘도 고르곤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유행은 매년, 매월 바뀝니다. 비슷한 옷이 범람하면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죠. 그렇게 패션업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혁신을 일으킵니다. 디자이너들은 한번 멋진 옷을 만들고 나면 바로 ‘다음 작품’을 구상하죠.

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구글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인 ‘구글 I/O’ 취재였는데 여기서 구글은 참가자들에게 새 태블릿PC ‘넥서스7’을 한 대씩 나눠줬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2010년 4월 애플이 처음 아이패드를 판매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아이패드의 팬이었습니다. 아이패드로 책도 보고, 신문도 읽고 심지어 멀쩡한 종이책도 낱장으로 뜯어 전자책으로 바꿀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구글의 존 래걸링 이사가 “구글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패드를 갖고 있는데도 요즘은 ‘넥서스7’만 들고 다닌다”고 하는 말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말부터 열흘 이상 넥서스7을 써보니 그 말이 맞더군요. 저도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지 않게 됐습니다. 가볍고 성능도 좋았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도 많았습니다. 똑같은 콘텐츠인데도 과거 애플에서 산 전자책과 앱을 모두 다시 사야 했고, 애플의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주소록은 ‘구글 클라우드’와 교환되지 않았습니다. 아이폰 문자메시지인 ‘아이메시지’도 구글폰에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애플이 특허로 보호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사슬에 묶인 느낌이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처럼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이제 옷, 음식, 집처럼 삶의 필수적인 도구가 돼 갑니다. 우리가 옷에 대해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건 이게 사람들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추위를 막는 옷 디자인에 특허를 인정하면 누군가 추위에 떠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디자인을 베껴서라도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게 가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겁니다. ‘김치찌개 특허’가 없고, 아파트가 대부분 똑같이 생겼어도 소송에 걸리지 않는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구글과 애플은 여전히 서로 특허권을 놓고 대결 중입니다. 두 회사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삼성전자 등 대부분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특허전쟁 중입니다. 이런 싸움은 미래보다 현재만을 강조합니다. 자연스레 혁신은 중단됩니다. 지금이 바로 IT 분야 기업가들이 패션 산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특허소송#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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