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만화]<16>웹툰 ‘미호 이야기’ 연재 마친 허혜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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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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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안 배우고 덜컥 시작한 사극, 섬세한 붓터치 시간 많이 걸려 고생”

사극 호러 웹툰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허혜진 작가. 착하고 여려 보이는 인상과 달리 그녀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는 섬뜩하고 무서웠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사극 호러 웹툰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허혜진 작가. 착하고 여려 보이는 인상과 달리 그녀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는 섬뜩하고 무서웠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구미호 전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세요?”

초가을로 접어들어 쌀쌀한 바람마저 불던 날, 머리를 풀어헤치고 온 허혜진 작가(24)가 대학로의 한적한 카페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정네들의 간을 빼먹으며 사람이 되길 원하는 꼬리 아홉 개의 암여우, 구미호.

“왜 구미호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 어떻게 해서 사람의 간을 빼먹기 시작한 건지. 이 전설의 시작은 사실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 구미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돼요.”

어릴 적부터 병약한 소녀를 위해 집안 어른들은 꼬리가 아홉 달린 수컷 여우 한 마리를 한약재로 잡아온다. 약재로 쓰기 위해 여우를 죽이기로 한 날이 찾아왔지만, 소녀는 몸을 던져 여우를 구해낸다. 그날 밤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가 소녀를 찾아왔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소녀의 꿈을 들어주기 위해 여우는 목숨을 걸고 도깨비와 내기를 했고 그 덕분에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여우는 내기에서 지고, 도깨비는 새로운 내기를 제안한다. “너까지 아홉 명의 소녀에게 구슬을 먹일 건데 구슬을 먹은 소녀는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열두 살이 되는 해에 9일 동안 구미호는 그 아이들의 간을 빼먹어야 한다. 9일간 구미호에게 잡히지 않은 아이들은 살려주마. 그러나 여우의 목숨은 없겠지.”

웹툰 ‘미호 이야기’는 이렇듯 작가가 상상한 구미호 전설의 시작과, 아홉 명의 아이가 12세가 되던 해 구미호와 숨바꼭질하는 9일간을 만화로 그렸다. 살고자 도망치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잡으려는 구미호의 숨 막히는 긴장감이 돋보인다. 간결한 선과 세련된 단색을 추구하는 보통의 웹툰들과 달리 미호 이야기는 전설에 어울릴 법한 동양화의 섬세한 선으로 은은한 수묵화의 느낌을 살렸다. 이런 특색이 스토리의 분위기와 긴장감을 더 잘 살려냈다.

“동양화를 따로 전공하진 않았어요, 사극물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게 동양화적인 붓 터치였죠. 섬세한 표현을 위해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힘들어요. 한복을 그리는 데도 손이 많이 가고요.”

허 작가는 기존 웹툰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극 장르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풍부한 상상력과 독특한 그림체를 인정받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방영되기도 했다. 미호 이야기 연재를 마치고 최근 ‘네이버 미스테리 단편’에 연재한 공포 단편작도 사극이었다.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둔갑하는 쥐 이야기를 그려 ‘사극 호러 웹툰’이라는 장르에 능한 모습을 보여줬다.

“차기작은 현대물과 사극물을 놓고 고민하고 있어요. 사극물로는 우리가 알던 전래동화에 등장한 인물들이 사실은 다 얽히고설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죠.” 지금 그는 한국의 전래동화와 민담 책 여러 권을 꼼꼼히 공부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사극물과 현대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기에 “현대물은 재미없을 것 같다”고 말했더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엿보이는 네 컷 만화를 보내왔다. 그래도 그 의견을 철회하기는 싫었다. 허 작가는 사극이 어울리니까.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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