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만화]<15>웹툰 ‘지상 최악의 소년’ 연재 시작한 정필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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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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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가족 이야기 내려놓지 못하네요”

16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난 정필원 작가. 그는 작은 사각형 프레임안에 가족애를 담아 왔다. 부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6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난 정필원 작가. 그는 작은 사각형 프레임안에 가족애를 담아 왔다. 부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삶을, 행복을,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한 가지. 전부를 걸어 지켜야 할 단 한 가지.”

작품의 마지막 화(話)에 나왔던 그 가슴 뭉클한 말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누구에게나 전부를 걸어 지키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지난해 7월 웹툰 ‘패밀리맨’의 연재를 마치고 1년여의 공백 뒤 최근 ‘지상 최악의 소년’으로 돌아온 미혼의 정필원 작가(31)에게 그 한 가지는 의외로 ‘가족’이었다.

사랑스러운 아내, 아내를 꼭 닮은 유치원생 딸, 지능이 다른 아이보다 조금 떨어지는 초등학생 아들. 이들을 생각하면 아빠는 늘 슈퍼맨이 된다. 전직 구조대원인 아빠는 심한 부상을 당해 가족과 떨어져 공장에서 일하다 화재로 얼굴에 보기 흉한 상처를 입고 공장에서 해고당한다. 더구나 그에게 내려진 갑작스러운 폐암 말기 진단. ‘이런 모습으론 아내와 아이들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한 그는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모진 말까지 내뱉으며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그린 만화, 웹툰 패밀리맨이다.

“사실 제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어요. 애틋한 감정도 없고요.”

정 작가의 발언은 놀라웠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물씬한데 그걸 그린 작가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답이었기 때문. 패밀리맨에 그의 성장기가 반영됐을 걸로 상상했던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이 때문에 제가 본 가정은 아버지가 부재한 집이었죠. 어쩌면 패밀리맨에서 아버지가 계속 가족의 주변을 맴돌게 그려진 것도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작가는 아버지의 부재를 전혀 못 느꼈다고 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가슴 한구석에 숨겨뒀던 그리움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강한 분이었어요. 아버지의 역할까지 다 하셔야 했죠.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 한구석이 찡합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전구를 갈아 끼우시는 모습이 왜 아직까지 짠한지….”

그래서일까. 이번 신작 지상 최악의 소년도 결국 유년 시절 어머니의 사랑이 부재했던 소년의 불행함을 그렸다. 정 작가의 모든 작품은 이렇듯 가족과 연관이 있다. ‘효자 만화가’라는 별명을 장난스레 제안했더니 연방 손사래 친다.

“어머니는 제가 만화가 말고 공무원이 되길 원하셔요. 남자는 자고로 착실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면서 절 볼 때마다 말씀하시죠. 어제도 티격태격했어요. 이렇게 만화가 하고 있는 것 보면 효자는 아니죠. 근데 신문에 나가면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네요.”

어머니 이야길 하는 동안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는 작가를 보며 그의 작품, 패밀리맨 속의 아빠의 모습이 보였던 건 기분 때문이었을까.

“사람의 수만큼 행복의 가짓수도 다양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자격이 있고 그 행복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입니다. 어떤 모습과 상황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 거죠.”

그러고 보니 패밀리맨에서 죽어가던 아버지는 가족 옆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그랬고, 인터뷰 내내 어머니 이야길 하며 웃음 짓던 작가도 그러했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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