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축을 말한다]<10>권문성 교수의 양평 병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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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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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이 몸 낮춘 교회, 전원에 녹아들다

교회는 신(神)을 생각하는 공간이지만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경기 양평군 병산교회를 설계한 권문성 교수는 그래서
교회도 ‘집’과 같다고 생각한다. 병산교회는 언덕 아래 마을에 몸을 낮춰 함께 어우러진다. 사진 제공 아뜰리에17
교회는 신(神)을 생각하는 공간이지만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경기 양평군 병산교회를 설계한 권문성 교수는 그래서 교회도 ‘집’과 같다고 생각한다. 병산교회는 언덕 아래 마을에 몸을 낮춰 함께 어우러진다. 사진 제공 아뜰리에17
《한국의 종교 건축물은 대부분 풍경 속에 스며들기보다 풍경 위로 도드라진다. 지난달 21일 오전 찾아간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교회는 이 ‘대세’에서 벗어난 건물이다.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낮췄다. 지난해 4월 완공된 이 교회의 설계자인 권문성 성균관대 교수(51)를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연예인이 아니고서야 ‘나 잘났다’고 나대서 좋은 소리 듣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건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어떤 모임에서든 새로 들어온 사람이 혼자 고고한 척 행동하면 환영받지 못하죠. 오래 묵은 경치에 새로 들어서는 건물도 마찬가지예요. ‘건물이 어떻게 보일까’보다 ‘이 건물로 인해 풍경이 어떻게 바뀔까’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경쟁하듯 하늘로 높이 솟은 첨탑(尖塔)이 이 교회에는 없다. 말쑥한 십자가 표지 하나를 지붕 위에 올렸을 뿐이다. 정문 옆에 철골을 얽어 세운 소박한 종탑은 예전 건물에서 50년 넘게 쓰던 것을 옮겨 왔다.

“강가에 슬슬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는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데…. 크고 화려한 교회에 대한 생각이 건축주에게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다행히 ‘고즈넉한 마을 풍경과 삶을 거스르지 않고 품어내야 한다’는 제안에 동의해 주었어요.”

북쪽 강변에서 차를 몰고 접근하며 바라보는 이 교회의 규모와 남쪽에 면한 마을로부터 걸어 올라가며 느끼는 크기는 사뭇 다르다. 기능에 따라 세 채로 나눈 건물의 배치를 통해 공동체 밖으로부터의 시선과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병산교회의 예배당 내부. 살짝 눌린 원통 모양의 평면 모서리에 단을 둬 시선을 집중시켰다. 사진 제공 아뜰리에17
병산교회의 예배당 내부. 살짝 눌린 원통 모양의 평면 모서리에 단을 둬 시선을 집중시켰다. 사진 제공 아뜰리에17
용지 남쪽에 나란히 앉힌 직육면체의 교육관과 사택 건물은 살짝 눌린 원통 모양의 예배당 아랫도리를 가린다. 그 때문에 마을에서는 교회보다 그 안에 사는 목회자가 먼저 보인다. 건물보다 공동체 구성원이 두드러지는 셈이다. 북쪽 길을 짚어 오는 외부 방문자에게는 단단한 예배당 벽체가 온전히 드러난다. 안에서 부드럽고 밖에서 강인한 가장을 떠올리게 한다.

서남쪽 마당으로부터 언덕을 오르는 방문자의 눈에는 공간의 이야기가 한 꺼풀씩 차례로 벗겨져 담긴다. 교육관과 예배당 사이 계단을 오르면 밖에서 눈치 챌 수 없었던 뒷마당이 나타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길을 꺾어 올라간 4층 옥상의 실외예배당에서 겹쳐 쌓아 만든 공간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다. 이동하는 시선의 중심에 언제나 서 있었던 용문산 백운봉이 멀찌감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1350m²의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땅이지만 세 건물을 떨어뜨려 놓고 이동로는 전부 외부에 뒀습니다. 마당으로 나가야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는 전통 가옥 이동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쓰는 교회니까요. 마당에 나서면 마을 산이 보여야 하지요. 백운봉은 이 동네를 다녀간 사람들이 누구나 기억하게 되는, 마을 산 같은 풍경입니다.”

전통 건축의 공간 해법을 내놓고 강조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활용하는 권 교수의 작업 스타일은 대학 때의 ‘자습’ 경험에서 비롯했다. 휴교가 잦던 시절 그는 카메라를 들고 나라 곳곳 이름난 한옥을 뒤지고 다녔다. 교회 건물에 전통 가옥 공간 구도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감각은 경북 경주 관가정(觀稼亭) 마당에 텐트를 치고 ‘살아 봤던’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교회’가 아닌 ‘집’이라는 단어를 썼다. 교회라도 하늘이 아닌 땅에 붙은 공간인 이상 신(神)보다 사람을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 교수에게는 오피스빌딩, 미술관, 교회가 모두 그 시간에 그 공간을 사는 이들을 위한 ‘집’이다. 그런 믿음은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현암사 사옥, 200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작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 덕원갤러리의 리노베이션 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사동 길을 끝내는 표지 같은 건물이었던 덕원갤러리는 그의 손을 거친 뒤 인사동의 이야기를 종로로 확장하는 징검다리 공간이 됐다. 답답하게 닫혀 있던 현암사 사옥은 낮은 집이 옹기종기 붙어 앉은 언덕길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골목 풍경을 확장한 공간으로 개조된 것이다. 권 교수는 헌 집을 새 집으로 고쳐 지을 때도 집보다 주변을 앞서 살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를 제12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8월 29일∼11월 21일)의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했다. 이번 건축전 주제는 ‘건축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꾸준히 추구해온 주제와 딱 맞아떨어져서 부담이 좀 덜하겠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 건축이 이제 겨우 세계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나처럼 ‘나쁜 집 짓지 않는 것’이 목표인 건축가 갖고는 어림없죠.(웃음) 다른 건축가들을 위해 ‘잘 비워 놓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권문성 교수는…
△1983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91년 동 대학원 석사 △1995∼2008년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17 대표 △2008년 성균관대 교수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상(현암사 사옥) △200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건축상(덕원갤러리) △2008년 서울역 복원 및 활용 계획 현상공모 당선 △2010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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