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747>切切偲偲하며 怡怡如也면 …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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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子路(자로)가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을 선비라 부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와 같이 답했다고 ‘논어’의 ‘자로’에 나온다. 공자는 자로에게 수시로 준엄한 꾸지람을 내려 朋友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려주고자 이렇게 대답한 듯하다. 切切은 切責(절책)이니, 간절하게 責善해서 권장하는 일이다. 시시는 친절하게 알려주어 激勵하는 일이다. 怡怡는 和順(화순)이니, 순순하게 和樂하는 것을 말한다. 兄弟는 같은 부모의 형제만이 아니라 喪服(상복)을 입는 同族을 가리킨다.

尹拯(윤증)은 ‘切切吟(절절음)’ 시를 아우에게 보내, “切切과 怡怡는 쓰는 곳이 다르다지만 형제 사이에는 충고도 우애도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金正喜(김정희)는 벗 사이의 책선과 격려를 시切琢磋(시절탁차)라 하고 “좋은 金(금)은 백 번 달구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아름다운 玉(옥)은 천 번 가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했다.

시절은 切切시시를 줄인 말, 탁차는 切磋琢磨(절차탁마)를 줄인 말이다. 정약용도 시절탁차를 중하게 여겨 “뼈에 침을 놓듯이 벗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경계하고 칼로 눈을 깎듯이 벗의 잘못과 죄를 경계해야 하거늘, 설령 벗에게 넉넉한 재주와 큰 덕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무엇 때문에 벗을 칭찬하겠습니까. 더구나 시류의 습속에 빠진 사람을 과찬하면 이는 그를 남의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라고 했다.

옛 사람은 벗과 형제 사이의 責善, 激勵, 和樂을 중시했건만 지금 사람은 이 도리를 잊어버린 것이나 아닌지 안타깝기만 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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