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입고…걸치고…보고…듣고 패션코드로 살아난 한글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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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소설 ‘대지’의 저자 펄 벅이 “한글은 24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문자체계이지만 한글 자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언어음성이라도 표기할 수 있다”며 창제자인 세종대왕을 극찬한 말이다. 문자로서의 한글의 우수함이야 오래전부터 세계적 학자, 문호들을 통해 알려져 왔다지만 ‘디자인’으로서의 가치는 어떨까. 2009년 가을, 패션 산업계는 한글의 ‘그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부단히 고민하고 또 분주한 모습이다.

○ 한글,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지난달 30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이건만 디자인연구소’. 한글을 모티브로 한 그의 패션 잡화 종합브랜드 ‘이건만 AnF’의 두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여기서 전국 10개 매장에서 판매되는 브랜드 제품 아이디어가 나오고 디자인된다.

“한글은 ‘문명’이 아닌 우리만의 ‘문화’이다. 강대국의 문화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면 한글은 우리만의 자연발생적인 문화유산”이라며 말문을 연 이건만 대표는 “이 훌륭한 ‘재료’를 가지고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고 또 그래야만 한글 디자인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사무실에 전시된 패션 잡화 샘플들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모노그램(문자들이 얽혀 있는 문양) 디자인이다. 이에 더해 한복 저고리 모양, 한옥 기와를 연상케 하는 핸드백 등 한국의 문화를 담아낸 제품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는 ‘독특한 문양이고 디자인이어서 해외에서도 호응이 높지 않겠느냐’는 긍정론에 대해 “브랜드 콘텐츠는 분명 한글, ‘코리아 컬처’지만 아직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무조건 ‘이게 한글이고 한국 문화다’는 식의 신비주의 마케팅은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장기적으로는 먹히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일본적인 요소를 가미했지만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겐조 등의 성공 비결은 꾸준한 정부의 지원, 그리고 해외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의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은 글로벌 브랜드로 먼저 성장해야만 브랜드가 담아내는 한글 디자인도 세계 소비자에게 영구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류업계 쪽에서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등 한국의 명시나 감성적인 지인의 편지 글귀 등을 써넣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 할리우드의 패셔니스타 린지 로한 등이 그가 디자인한 한글 패션을 입고 포즈를 취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서체 디자인은 ‘한글’의 얼굴

한글의 ‘미(美)’를 알리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인터넷 및 각종 간판 등을 통해 접하는 글꼴(서체)이다. 누구에게나 먼저 보여지고 다가오는 한글의 ‘모양새’이자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체 개발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서체 하나로 외국인들은 그 나라의 문화와 문자의 수준을 짐작하곤 한다”면서 “스위스의 경우 헬베티카(Helvetica) 서체 하나로 세계 시각 디자인 문화의 중심에 섰고 자국의 예술성, 문화적 수준을 알렸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체 개발 외에도 산돌은 최근 자회사 ‘티움몰(www.tiummall.com)’을 오픈해 한글로 디자인된 각종 패션 잡화를 판매 중이다. 6월에는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오프라인 상점을 열었다.

티움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 개발에는 소속 디자이너 외에 전국 국어교사 모임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좋은 글귀나 잊혀져 가는 고유의 우리말을 발굴하고 개발해야만 더 나은 글꼴도, 한글 디자인도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제주도의 토속적인 방언과 문화적 독창성을 살린 고유의 ‘제주 글꼴’을 현지 전문가들의 모임인 제주도디자인협동조합과 함께 개발 중이다.

○ 한글 디자인에 ‘스토리텔링’을 입혀라

한글의 디자인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백승정 한글문화산업디자인연구소 원장은 “받침까지 함께 어우러진 한글은 단순 나열식의 알파벳과는 달리 수직 수평 기울기에 따라 변화무쌍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글 디자인이 글로벌 마켓에서의 인지도를 높이고 폭넓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모두가 공감하는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기러기 아빠’, ‘아줌마’, ‘품절남’, ‘품절녀’라는 재미난 말은 이제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하나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는 아기자기한 한글 디자인 상품을 만드는 것도 스토리텔링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백 원장의 설명.

그는 이어 “국립국어원이나 정부 청사 건물의 문과 벽 등 모두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공 디자인의 영역에 한글 디자인을 좀 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07년 문을 연 한글문화산업디자인연구소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석사급 이상의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비영리단체. 이들은 어린이용 침구에서부터 인형, 우산 등 한글 패션 잡화를 개발하고 공공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한글 디자인 등을 연구해 왔다.

연구소는 7일에서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플라자갤러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 등의 후원으로 관련 디자인 제품들을 선보이는 초대 전시회를 갖는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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