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떠오르는 새 별]플루티스트 최나경

  • 입력 2009년 6월 18일 02시 59분


오른손 마비도 못 말린 예술혼

美메이저 오케스트라 첫 입성

15일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플루트 부수석 최나경 씨(26)에게서 인터뷰 시간을 바꿔 달라는 ‘다급한’ e메일이 왔다. 새로 약속한 시간은 미국 동부 시간으로 자정. 늦은 시간 전화로 연결한 그의 목소리에서는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원래 인터뷰하기로 한 날은 쉬기로 했는데 한 플루티스트가 아프다고 해서 대신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연주가 있을 때는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늘 대기해야 해요.”

2006년 그는 한국 국적 관악주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뽑혔다. 네 차례에 걸친 오디션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187 대 1의 경쟁률이었고 베를린심포니 플루트 수석, 제네바 콩쿠르 우승자 등 쟁쟁한 이들이 함께 시험을 봤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난해 ‘테뉴어(종신단원)’ 자격을 받았다.

그는 이 오케스트라에서 유일하게 미국인이 아닌 연주자이자 최연소 단원이다. 서울예고 1학년 때 커티스음악원으로 유학 온 그는 ‘뼛속까지’ 미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합리적이고 정확하지만 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 미국 생활, 익숙하지 않은 미국 문화와 정서. 힘들 때 이런 생각을 했다. ‘1996년 대전에서 서울로 혼자 유학을 떠난 지 10여 년 만에 미국에서 오케스트라에 들어갔구나…. 최나경, 기특하다!’

그는 고향이 그리워 눈물이 나면 플루트를 들었다. “외롭고 쓸쓸하면 눈물이 나요. 닦아도 계속 흐르니까 줄줄 울면서 플루트를 불었죠.”

플루트로 꿈을 이뤄가고 있지만 큰 고비도 있었다. 19세 때 커티스음악원 시절 필라델피아 콩쿠르에서 1위를 한 뒤 오케스트라 협연을 하며 화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점점 안 좋아지더니 연필 한 자루 들기가 힘겨울 지경이 됐다. 그래서 왼손으로 밥 먹고 필기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15명의 의사를 만났지만 누구도 이유를 몰랐다. 근육도 뼈도 멀쩡하다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의사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니 음악을 그만두라고.

“학교 선생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이해를 못 하고…. 의사 말이 맞을까? 플루트를 하지 말아야 할까? 온통 물음표뿐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생 하고픈 건 플루트더라고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믿어주지도 않으니 나라도 나 자신을 100번, 1000번이라도 믿어주자고 마음먹었죠.”

이후 5개월 동안 손은 조금씩 좋아졌다. 방학이 끝난 뒤 첫 레슨. 슈만의 ‘로망스’를 불었다. 손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꾹 눌린 마음을 모두 털어놓는 기분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 당시 87세의 줄리어스 베이커 선생님께서 ‘센세이션!’이라고 하셨어요. ‘음악이 더 깊어졌구나. 지난 5개월간 너는 잃은 것이 없다’라고요.”

“연습하다가도 플루트가 얄밉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요. 악기 들고 바람 불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닌가? 한참이나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 고칠 게 많은지. 하고 싶은 건 플루트 하나 잘 부는 것뿐인데!”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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