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장자연 사건 보도와 인권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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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인권위원회 윤영철 위원, 정성진 위원장, 황도수 위원(왼쪽부터)이 24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장자연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김미옥 기자
독자인권위원회 윤영철 위원, 정성진 위원장, 황도수 위원(왼쪽부터)이 24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장자연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김미옥 기자
《최근 2주간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매체 구분 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요 뉴스로 다뤄온 사건이 있다. 탤런트 고 장자연 씨 문건 사건이다. 언론에선 고질적인 연예계 비리 척결과 알 권리 충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민적 호기심에 편승한 보도 태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성 상납, 술자리 접대, 아방궁 등 선정적 자극적 제목 뽑기는 언론의 상업적 속성을 넘어 고인과 유족에 대한 치명적 명예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4일 ‘장자연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정성진 위원장(전 법무부 장관)과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황도수 위원(변호사)이 참석했다.

사회=황유성 지식서비스센터장》

“성상납에 초점맞춘 선정보도, 명예훼손 우려”

―유족이 처음 보도한 방송 관계자를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알 권리라는 공익과의 관계와 어떻게 충돌합니까. 방송을 인용 보도한 다른 매체는 면책되는지요.

▽윤영철 위원=문건을 입수한 뒤 보도하기까지 과정이 너무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후속 취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검증한 다음 국민의 알 권리라는 관계 속에서 보도 여부를 판단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느낌입니다. 다른 매체도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추가 취재나 확인 과정 없이 따라가기 보도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정성진 위원장=방송이 먼저 보도했더라도 다른 언론은 적어도 검증과 확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뒤따르는 보도는 내용이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전적으로 공익을 위한다는 사유가 충족돼야 합니다. 유족의 고소에 따라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실체에 대해 과도한 흥미를 유발하는 보도를 한다면 치명적인 명예훼손의 결과를 낳습니다. 검찰 수사나 법원 재판에도 예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됩니다.

▽황도수 위원=장자연 씨는 공인으로서 사회적 이슈가 된다고 판단합니다. 성 스캔들, 불평등 계약 등은 공적인 사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객관성이나 진실성의 측면에서도 문건이 중요 자료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필체도 확인됐으니 상당 수준 객관성이 담보됩니다. 그렇더라도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는 게 개인적 판단입니다. 방송 보도를 다른 매체가 인용한 것도 면책되지는 않습니다. 충분한 검증과 확인 등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언론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유력 인사의 직업을 적시해 결과적으로 인터넷에 확인되지 않은 명단이 급속도로 번지도록 조장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윤 위원=언론사 대표, 대기업 회장, 방송사 PD 등의 이름이 장자연 문건에 나온다고 신문이 보도하면 독자에게 인터넷을 뒤지도록 유도하는 셈이 됩니다. 또 전 소속사 건물의 3층이 성 상납의 장소라는 식의 선정적 보도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황색신문이나 다룰 뿐 제도권 언론은 소문에 달려들지 않습니다.

▽정 위원장=고 장자연 씨의 명예훼손과 관련해서는 일단 고소가 있으니 성립될 여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 상납 등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인적 사항을 추측할 수 있도록 특정하면 문제가 됩니다.

▽황 위원=언론이 장자연 리스트가 있다고만 보도해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저마다 명단 캐내기 경쟁을 벌이게 마련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식의 소문을 언론이 확인해주는 식의 보도는 곤란합니다.

―이번 사건 보도와 관련해 언론의 상업주의적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윤 위원=장자연 씨 사건에 대해서는 언론이 정말 잘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는 이른바 ‘도배질’이 횡행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전체 언론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선정주의와 상업주의에 매몰돼 가는 인터넷 공간의 방향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독자의 흥미와 관심만 좇아서는 저널리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 무엇이 중요한지 의제를 찾아가고 설정하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차제에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황 위원=인터넷 매체와 정론지는 각자 역할이 다릅니다. 정론지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 가치관을 제시해 독자를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성과 충돌할 때 정론지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정 위원장=언론이 장자연 씨 사건을 하루도 빠짐없이 대서특필하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과연 이 사건이 비중이나 가치 면에서 예멘에서의 한국인 테러 사건보다 더욱 중요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멘에서의 한국인 테러 사건은 이슬람권에서의 재외국민 안전과 관련해 어쩌면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는데요. 장자연 씨 사건 보도에서 언론이 보인 선정성과 상업성은 언론의 품격이나 가치관에 대한 독자의 불신을 불러오지 않나 우려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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